HERITAGE

1911년 성경전서, 한글과 함께 퍼지다

루카 · 2026.09.21

1911년 3월, 한글로 된 신구약 성경 한 권이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름은 '셩경젼셔'였습니다. 한국 교회를 세운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발자취가 결국 한 권의 책으로 모이는 자리를 만납니다. 성경이 우리말로 온전히 번역된 그날입니다.

신약은 그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성경번역자회가 1900년 임시본을 낸 뒤, 1906년에 공인 신약 '신약젼셔'를 완성했습니다. 구약은 그때까지 낱권으로만 나와 있었습니다. 창세기와 시편이 1906년에, 잠언과 출애굽기, 사무엘서, 말라기가 1907년에, 열왕기와 이사야가 1908년에 따로따로 번역돼 나왔습니다. 구약을 우리말로 옮기려는 첫 시도는 1895년 한국에 온 유대인 알렉산더 피터스가 시편 일부를 번역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이 방대한 작업을 끝까지 감당한 사람이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레이놀즈였습니다. 한국 이름은 이눌서입니다. 그는 전주에 머물며 한국인 번역위원 김정삼, 이승두와 함께 구약을 옮겼습니다. 두 한국인은 성서공회가 임명한 공식 번역위원으로, 선교사와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우리말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하디와 마펫 같은 선교사들도 번역위원으로 참여했으나 짧게 일하고 물러났습니다. 구약 번역은 10여 년이 걸렸고, 1910년 4월 2일 마침내 완결됐습니다.

이듬해인 1911년 3월, 구약젼셔가 출간되면서 이미 나와 있던 신약과 묶여 '셩경젼셔'로 발행됐습니다. 한국에서 나온 최초의 신구약 완역 성경이었습니다. 미국성서공회는 이 성경을 상하 두 권으로 나누어 펴냈습니다. 사람들은 이 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약젼셔는 나오자마자 팔려 나가, 여섯 달 만에 6,500권이 나갔습니다.

이 성경은 한글과 함께 퍼졌습니다. 번역자들은 특정 지역 사투리가 아니라 서울의 표준적인 말을 골라 성경을 옮겼습니다. 그 결과 성경은 한글 표기를 통일하고 표준말을 널리 퍼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한자를 배우지 못한 사람도, 글을 모르던 부녀자도 우리말 성경 앞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이 곧 한글 교과서 노릇을 한 셈입니다.

말씀이 우리말로 풀리자, 빛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자에게 깨닫게 하나이다"(시편 119:130). 오늘 우리가 손에 든 성경은 누군가 10여 년을 매달려 한 절 한 절 옮긴 열매입니다. 그 수고를 값없이 물려받은 우리가 이어 갈 유산은, 애써 번역된 말씀을 실제로 펼쳐 읽는 자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