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페르시아만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이란 군사 표적을 타격했습니다. 세계 원유의 상당량이 지나는 이 좁은 바닷길을 둘러싼 긴장이 다시 무력 충돌로 번진 것입니다. 오늘은 이 사안을 사실부터 정리하고 성경의 시선으로 짚어 보려 합니다.
인베스팅닷컴 코리아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부사령부는 한국시간 9월 1일 오후 1시경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표적에 대한 타격을 개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중부사령부는 이번 타격이 최근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업용 선박을 공격하고 역내 미군을 겨냥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밝혔습니다. 튀르키예 아나돌루통신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작전을 크고 강력한 타격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했습니다. 타격 소식이 알려지자 국제 유가는 출렁여 브렌트유가 배럴당 93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번 충돌은 올해 2월 말부터 이어져 온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대립이 확대된 국면입니다.
쟁점은 갈립니다. 타격을 지지하는 쪽은 이렇게 봅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경제의 동맥과 같은 통로이며, 무장 세력이 민간 상선을 공격하고 통행을 위협하는 것은 국제 질서와 무고한 생명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다. 이를 억지하지 않으면 더 큰 도발과 경제 충격으로 이어지므로, 정당한 무력 사용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려하는 쪽은 어떤 정밀 타격도 민간 피해와 보복의 악순환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고, 확전은 외교의 문을 닫아 버린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성경은 공권력의 자리에 대해 분명한 원리를 줍니다. 사도 바울은 통치 권세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라고 말합니다(로마서 13:4). 국가가 칼을 지닌 것은 폭력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고한 사람을 지키고 악을 제어하기 위해서입니다. 상선을 공격하고 민간의 통행을 위협하는 폭력을 억지하는 정당한 힘의 사용에는 성경적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행의 자유와 무고한 생명을 지키는 억지력의 가치를 분명히 지지합니다.
다만 무력은 목적이 아니라 질서와 생명을 지키는 수단이어야 합니다. 전쟁은 이기는 쪽에서도 사람을 살려 내지 못합니다. 이 국면에서 가장 쉽게 잊히는 이들이 있습니다. 해협을 오가는 이름 없는 선원들, 국경 안쪽의 이란 민간인, 그리고 감시받는 이란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란은 세계에서 신앙 때문에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그 억압 아래에서도 지하 교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도의 제목은 이것입니다. 이 충돌이 확전이 아니라 질서의 회복으로 가라앉기를, 힘을 쥔 이들이 무고한 생명을 최우선에 두기를, 그리고 이 소식의 그늘에 가려진 이란의 성도들이 그 자리에서 지켜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박해받는 교회를 위한 우리의 기도 목록에 오늘 이 지역을 함께 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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