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 가운데 가장 자주 나오는 것은 이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가 죽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 그를 직접 본 적도 없는 익명의 저자들이 떠돌던 이야기를 모아 쓴 전설이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독교의 토대는 흔들립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정면으로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먼저 반대편의 논리를 가장 강한 형태로 세워 보겠습니다. 네 복음서는 예수의 활동이 끝난 뒤 대략 사십 년에서 칠십 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본문 자체에 저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니, 시간이 흐르며 과장되고 신격화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요컨대 목격 증언이 아니라 후대 신앙 공동체의 창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는 정직하게 인정할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서는 현대의 속기록이 아닙니다. 저자들은 분명한 신학적 목적을 가지고 자료를 골라 배열했습니다. 그러나 목적을 가지고 썼다는 것과 사실을 지어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고대 전기라는 장르의 관습 안에서, 핵심 사실에 충실하게 쓰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연대를 따져 보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복음서보다 앞선 바울의 편지는 이미 서기 오십 년대에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제시하며, 그들 대다수가 지금도 살아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것은 반박이 가능한 상태에서, 즉 아니라고 말할 증인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시기에 공개적으로 쓴 것입니다. 전설은 목격자들이 다 죽은 뒤에야 자랍니다.
목격자성에 대해서도 근거가 있습니다. 다수의 신약학자, 이를테면 리처드 보컴은 『예수와 그 목격자들』에서 복음서가 이름이 밝혀진 목격자들의 증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논증합니다. 이미 이세기 초의 교회 기록에는 각 복음서를 누가 썼는지에 대한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저자가 익명이라 해서 저자를 알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장 흥미로운 단서는 불리한 세부입니다. 당시 여성의 증언은 법정에서 남성만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네 복음서는 하나같이 빈 무덤의 첫 증인을 여성으로 기록합니다. 이야기를 지어내 설득력을 높이려 했다면 결코 넣지 않았을 대목입니다. 이런 불리한 세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저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하지 않고 일어난 일을 옮겼다는 흔적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복음서는 목격자들이 살아 있던 시기에, 반증이 가능한 환경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세부까지 남긴 채 기록되었습니다. 전설이 자라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고 증인이 너무 많았습니다.
성경은 이 증언의 성격을 스스로 밝힙니다. 베드로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베드로후서 1:16)라고 했고,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목격자들에게서 전해 받은 바를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 차례대로 썼다고 밝혔습니다(누가복음 1:1-4). 우리가 붙든 믿음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전한 증언 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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