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LOGETICS

사복음서는 서로 모순되는가

루카 · 2026.08.28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 가운데 가장 자주 나오는 것이 마태·마가·누가·요한 네 복음서의 기록이 서로 어긋난다는 지적입니다. 이 지적이 어디까지 타당하고 어디서부터 성립하지 않는지를 따져 보겠습니다.

회의론자들의 문제 제기는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구체적입니다.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이 몇 명인지, 그곳에서 만난 존재가 하나인지 둘인지, 도착한 시각이 언제인지가 복음서마다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족보는 이름이 상당 부분 일치하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낸 사건은 요한복음에서는 공생애 초반에, 나머지 세 복음서에서는 마지막 주간에 놓여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적었다면서 이렇게 어긋난다면 그 기록을 어떻게 믿느냐는 것입니다. 신중한 무신론 논객일수록 이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먼저 인정할 것부터 인정하겠습니다. 이 차이들은 실재합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우기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난제가 학계에서 깨끗하게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성전 정화 사건을 두고는 서로 다른 두 사건이었다는 견해와 요한복음이 시간 순서 대신 주제에 따라 배치했다는 견해가 지금도 나란히 논의됩니다. 다 풀렸다고 말하는 쪽이 오히려 정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서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곧장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세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첫째, 독립된 증언은 원래 세부가 갈립니다. 같은 사고를 목격한 사람 넷을 따로 조사하면 차량 색깔이나 시간에 대한 진술은 반드시 엇갈립니다. 법정에서 네 증인의 진술이 토씨까지 똑같이 나오면 수사관은 신뢰가 아니라 사전 입맞춤을 의심합니다. 세부의 불일치는 자료들이 서로 베끼지 않았다는 표지입니다.

둘째, 고대 문헌에 현대의 기준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범주를 잘못 잡은 것입니다. 당시 인물 전기는 녹취록이 아니었습니다. 사건을 주제별로 묶어 배열하고, 긴 말을 요약하고, 곁가지를 생략하는 것이 그 장르에서 허용된 서술 방식이었습니다. 시계와 녹음기를 전제한 정확성을 1세기 문서에 요구하는 것은 잣대 자체가 어긋난 요구입니다.

셋째, 어긋나는 항목과 일치하는 항목의 무게가 다릅니다. 갈리는 것은 인원수와 시각 같은 부수적 세부입니다. 반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 무덤에 장사되었다는 것, 그 무덤이 비었다는 것, 제자들이 살아난 그를 만났다고 증언하며 그 대가를 치렀다는 것은 네 자료가 모두 같습니다. 핵심에서 일치하고 주변에서 갈리는 것은 조작의 흔적이 아니라 목격 증언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겠습니다. 만약 초대 교회가 기록을 다듬을 힘과 의지가 있었다면, 이 불일치야말로 가장 먼저 지웠을 대목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네 개의 기록을 손보지 않은 채 나란히 놓아두었습니다. 조율할 수 있었는데 조율하지 않은 것입니다.

누가는 자기 기록의 성격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처음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누가복음 1장 3절입니다. 조사하고, 대조하고, 순서를 잡아 적었다는 말입니다. 감추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복음서의 세부 차이는 실재하며 일부는 지금도 논의 중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네 기록이 서로 독립적이라는 증거이고, 정작 신앙의 근거가 되는 사실들에서는 네 기록이 갈리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네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한 분을 증언했습니다. 우리가 손에 든 것은 짜 맞춘 하나의 진술서가 아니라, 조율되지 않은 네 개의 증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