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 11월, 대서양 한가운데를 지나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가 탄 배는 며칠 전 딸 넷을 삼킨 바로 그 바다 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선장이 그 자리를 알려 주자, 그는 종이를 꺼내 시를 적어 내려갑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찬송 가운데 하나, 원제 "It Is Well with My Soul"이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작사자 호레이쇼 스패포드는 시카고의 성공한 변호사였습니다. 무디 교회의 재정을 맡은 집사였고, 아내 애나와 함께 신앙 안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70년 무렵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었고, 이듬해에는 시카고 대화재로 투자한 재산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인 1873년, 아내와 네 딸을 프랑스 여객선 빌 뒤 아브르 편으로 먼저 유럽에 보냅니다. 사업 때문에 뒤따라가려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서양 한가운데서 이 배가 영국 선적의 철갑선과 충돌해 침몰합니다. 승객 이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안에는 스패포드의 네 딸이 모두 포함돼 있었습니다. 아내만 구조돼 살아남았고, 그녀가 보낸 짧은 전보 한 통으로 스패포드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는 곧바로 배를 타고 아내를 데리러 떠났습니다.
이 찬송이 특별한 이유는, 슬픔이 사라진 자리에서 쓰인 노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딸들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바로 그 바다 위를 지나며 쓴 고백입니다. 상황이 나아져서 평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영혼이 평안하다고 씁니다. 여기서 평안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하나의 근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극단적인 상실을 겪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아무리 애써도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흔히 찾는 것은 상황이 바뀌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스패포드가 보여 준 것은 다른 종류의 기도입니다. 상황은 그대로 두고, 그 상황 아래에 있는 더 깊은 자리를 붙드는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세상이 주는 평안은 상황이 좋아질 때 오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상황과 무관하게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이 찬송을 부를 때, 우리는 종종 후렴만 반복해서 부르고 그 배경은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정말 힘을 갖는 것은 가사 자체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것을 쓴 사람이 처했던 자리 때문입니다. 오늘 이 찬송을 다시 들으신다면,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평안은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평안입니까, 아니면 상황과 무관하게 이미 주어진 평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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