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

최권능, 예수천당 네 글자

루카 · 2026.08.24

한국 교회를 세운 사람들을 차례로 짚어 온 이 연재는 어제 박관준 장로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가 일본 제국의회에 진정서를 던지고 옥에서 숨을 거둔 그 시기, 평양 감옥에는 이미 또 한 사람이 갇혀 있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쳐 별명이 이름을 대신하게 된 사람, 최권능입니다.

본명은 최봉석입니다. 1869년 평양에서 태어나 여섯 살부터 한학을 배웠고, 열여섯 무렵 평양 감영의 통인으로 발탁돼 관리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근무 중 국고금 횡령 사건에 연루돼 평안북도 삭주로 유배됩니다. 인생이 무너진 자리에서, 그는 삭주읍교회를 세운 백유계의 전도를 받아 신앙을 갖게 됩니다. 유배가 그를 교회로 이끈 셈입니다.

이후 그의 삶은 전도 하나로 채워집니다. 매서인이 되어 벽동과 강계, 위원과 초산, 자성을 거쳐 압록강 건너 통화현까지 성경을 팔며 전도했습니다. 1913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에는 만주 지방 전도 목사로 파송돼, 1926년까지 남만주 일대에 스물여덟 곳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후 평양으로 돌아와서도, 황해도 수안과 곡산을 다니며 하회리에 새 교회를 세우기까지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것은 예배당의 규모가 아니라 그가 외친 네 글자였습니다.

1938년 9월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최봉석은 공개적으로 반대의 뜻을 밝힙니다. 평안북도 신미도로 몸을 피해서도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이어가다 1939년 5월 체포됐고, 풀려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6월에 다시 구속됐습니다. 1940년 봄부터는 채정민, 이인재, 한상동 등과 함께 평양에서 거부운동을 계속했고, 그해 9월 다시 붙잡혀 평양형무소에 수감됩니다. 전국 각지에서 잡혀 온 신사참배 거부자들과 함께 옥중 투쟁을 이어간 세월이었습니다.

1944년 3월 1일, 그는 옥중에서 사십 일 금식기도를 시작합니다.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4월 11일 병보석으로 풀려나 평양 기홀병원에 입원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4월 1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관직에서 시작해 유배지에서 신앙을 얻고, 만주의 들판과 평양의 옥중을 오간 한 생애가 그렇게 끝났습니다. 화려한 신학이나 조직을 남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오직 한 문장,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최권능이 조롱과 감옥을 오가면서도 놓지 않았던 그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줍니다. 유창한 언변이 아니라, 마지막 숨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신실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