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죽으면 죽으리라, 감옥의 기록

루카 · 2026.08.23

평양형무소 안에서 두 사람이 손가락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말을 하면 처벌받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주기철 목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일을 기록으로 남긴 안이숙이었습니다. 그의 수기 『죽으면 죽으리라』에는 그 대목의 제목이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손가락 회화입니다.

안이숙은 1908년 평안북도 박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한 뒤 대구와 선천에서 교사로 일했고, 신사참배 강요에 반대해 교단을 떠났습니다. 오늘 역사 면에서 다룬 박관준 장로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의회 의사당에서 체포된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국내로 압송돼 평양형무소에 갇혔고, 6년의 옥고 끝에 1945년 광복과 함께 풀려났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68년 기독교문사에서 이 수기를 냈습니다. 교계 안팎에서 크게 읽혔고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됐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제목은 에스더 4장 16절에서 왔습니다. 오늘 묵상 본문이기도 합니다.

손가락 회화 장면이 이 책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극적인 장면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작기 때문입니다. 감옥은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전부 차단한 공간입니다. 설교도 찬송도 예배도 대화도 금지됩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자리에 남은 것이 벽을 사이에 둔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신앙이 대중 집회나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이런 크기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장면은 설명하지 않고 보여 줍니다.

읽을 때 주의할 점도 분명히 해 둡니다. 수기는 회고록입니다. 겪은 일을 수십 년 뒤 기억에 의지해 쓴 글이고, 신앙적 해석과 사실 서술이 한 문장 안에 섞여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안의 체험 서술을 성경과 같은 권위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의 체험이 아니라 성경입니다. 이 책은 교리서가 아니라 증언입니다. 증언은 증언으로 읽을 때 가장 정확하게 읽힙니다.

그렇게 읽을 때 이 책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은 뚜렷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박해받는 교회를 향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합니다(요한계시록 2:10). 여기서 충성은 크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남는 것입니다. 안이숙은 살아남았습니다. 같은 감옥에 있던 주기철 목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감당한 몫은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순교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감당할 몫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자기 존재로 증명합니다.

한국 교회가 일제강점기에 무엇을 겪었는지 정리한 연구서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감방 안에서 통과한 사람이 직접 쓴 글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이 책은 여전히 읽을 값이 있습니다. 전부 읽기 부담스럽다면 옥중 기록 부분만이라도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말할 수 있는 수단이 전부 사라졌을 때, 나에게 남는 신앙은 어떤 모양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