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법치 국가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법을 어기는 것은 특권 요구다. 누구나 저마다의 확신을 내세워 지킬 법과 지키지 않을 법을 고르기 시작하면 사회는 유지되지 않는다. 게다가 역사를 보면 종교적 확신은 테러와 학살까지 정당화해 왔다. 그러니 신앙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표현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는 정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정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종교를 명분으로 한 폭력, 헌금을 빙자한 사기, 치료를 거부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어떤 신앙으로도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런 사례를 두고 믿음의 문제라며 두둔한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변호할 일이 아니라 회개할 일입니다. 신앙을 이유로 든다고 해서 모든 위법이 면제되지는 않는다는 지적은 옳습니다.
그러나 이 반론은 기독교가 실제로 무엇을 주장하는지를 정확히 보지 못합니다. 성경은 국가 권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고 말합니다(로마서 13:1). 세금을 내라고, 통치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성경은 요구합니다. 기독교의 기본값은 준법이지 저항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왜 명령을 어겼습니까. 산헤드린이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했을 때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행전 5:29). 여기에 기준이 있습니다. 국가가 자기 영역 안에서 명령할 때 그리스도인은 복종합니다. 국가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을 자기에게 돌리라고 요구할 때, 또는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하라고 명령할 때에만 순종을 거부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세금이나 부역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금 신상에 절하라는 명령 하나만 거부했습니다. 애굽의 산파들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 하나를 따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적 불복종에는 세 가지 표지가 따라붙습니다. 첫째, 범위가 좁습니다. 특정 명령 하나를 거부하는 것이지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공개적입니다. 숨어서 법망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 놓고 거부합니다. 셋째, 형벌을 감수합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특권을 요구하는 사람은 처벌을 면하려 하지만, 양심에 따라 불복종하는 사람은 처벌을 받으면서 그 법이 틀렸음을 증언합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들은 도망가지 않고 감옥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대가입니다.
논리만 놓고 보아도 이 구조는 무신론자에게 낯선 것이 아닙니다.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항변이 전범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유는, 실정법 위에 사람이 따라야 할 더 높은 기준이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이 어디서 오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모든 법은 결국 힘 있는 자의 결정일 뿐이라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기독교는 그 기준의 출처를 하나님이라고 답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독교의 기본은 준법입니다. 불복종은 국가가 하나님의 자리를 요구할 때에 한해, 좁게, 공개적으로, 대가를 치르며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원칙이 있었기에 어떤 국가도 사람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할 수 없다는 확신이 역사에 남았습니다. 국가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국가가 스스로 만들어 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