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더는 페르시아의 왕비였지만 자신이 유대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민족 전체를 죽이려는 계획이 세워졌을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은 그뿐이었습니다. 그가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게 보낸 답이 오늘 본문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16).
당시 페르시아 궁정에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안뜰에 들어가는 자는 죽인다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왕이 금 규를 내밀어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한 달 동안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가 왕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규례를 어긴다는 뜻이었고, 규례를 어긴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뜻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재촉하면서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네가 잠잠하면 구원은 다른 데서 올 것이다. 그리고 네가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 4:14). 앞의 말은 하나님의 계획이 사람 한 명에게 매여 있지 않다는 뜻이고, 뒤의 말은 그럼에도 지금 이 자리에 선 사람은 너라는 뜻입니다. 이 둘은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결과를 책임지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입을 여는 일은 사람의 몫입니다.
에스더의 대답에는 성공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그는 살아 돌아오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삼 일 동안 함께 금식하자고 부탁한 뒤, 죽으면 죽겠다고 했습니다. 될 것 같아서 하는 결단이 아니라 옳기 때문에 하는 결단입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 전체가 하나님이 일하신 기록으로 읽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이런 결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목숨이 걸린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손해가 걸린 자리에는 자주 섭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불편해지는 자리, 아니라고 하면 관계가 상하는 자리, 모른 척하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자리입니다. 오늘도 그런 순간이 한 번은 올 것입니다. 그때 결과를 먼저 계산하지 말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하십시오. 오늘 하루, 말해야 하는 줄 알면서 미뤄 온 한 가지를 골라 그 한 가지만 입 밖에 내십시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결과를 먼저 계산하고 옳은 것을 나중에 따지는 제 순서를 바로잡아 주옵소서. 제가 선 자리가 우연이 아님을 믿게 하시고, 그 자리에서 해야 할 말과 감당해야 할 몫을 피하지 않게 하옵소서.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도 순종하게 하시고, 결과는 주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오늘 저에게 맡기신 한 가지를 미루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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