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빠져나가던 노인이 성 밖 길 위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박해를 피해 도시를 떠나던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는 빛 가운데 만난 주님께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고, 다시 십자가를 지러 로마로 간다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돌립니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소설 『쿠오 바디스』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장면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성경에 없습니다. 초기 교회에 전해지던 이야기를 소설이 가져다 쓴 것입니다. 신앙의 근거로 삼을 기록이 아니라, 문학이 붙든 상징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 구분을 흐리면 소설이 성경 자리에 올라섭니다.
시엔키에비치는 1846년에 태어나 1916년에 세상을 떠난 폴란드 작가입니다. 『쿠오 바디스』는 1896년에 발표됐고, 폴란드 신문에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배경은 네로 황제 치하 로마의 기독교 박해이며, 작가는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기록을 참고했습니다. 1905년 그는 폴란드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나라를 잃고 러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제국에 짓밟히는 로마의 신자들은 곧 폴란드 사람들이었습니다. 라틴어 제목 "쿠오 바디스 도미네"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 장면이 힘을 갖는 이유는 베드로가 도망치고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그의 피신은 비겁한 도주가 아닙니다. 남은 신자들을 위해 지도자를 살려야 한다는 판단이었고, 교우들의 간청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즉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합리적인 걸음이 주님이 가시는 방향과 반대였습니다. 문제는 도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느 쪽으로 걷고 있느냐였습니다.
우리의 물러섬도 대개 그렇습니다. 노골적인 배신으로 시작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 가족을 생각해야 한다는 계산, 더 크게 쓰임받기 위해 지금은 몸을 낮춰야 한다는 설명이 앞에 섭니다. 그 설명들이 대부분 사실이라는 점이 이 문제를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신앙의 결정적 질문은 옳으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느냐입니다.
성경이 전하는 베드로의 마지막은 소설보다 앞서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한복음 21:18). 요한복음은 이 말씀이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가리킨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순교는 영웅적 결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다 도착하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순교를 미화하는 소설로 읽으면 절반을 잃습니다. 죽음이 신앙을 증명한다는 식의 감상은 성경이 말하는 순서를 뒤집습니다. 따라가는 것이 먼저이고 결과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취할 것은 방향에 대한 질문이고, 분별할 것은 비극을 아름답게 소비하려는 마음입니다.
박해받는 교회를 다룬 작품을 오래 읽어 온 독자에게도 이 소설은 권할 만합니다. 폴란드어 원전을 옮긴 번역본이 국내에 나와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 한 가지만 스스로 물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의 가장 합리적인 결정은 어느 쪽을 향해 걷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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