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나라가 해방됐습니다. 이틀 뒤인 8월 17일,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갇혔던 이들이 평양형무소 문을 나섰습니다. 그들이 자유를 얻고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승리도, 보상 요구도 아니었습니다. 회개였습니다.
신사참배는 일제가 강요한 참배 의식입니다. 조선예수교장로회는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 이를 가결했고, 거부한 이들은 검거돼 옥에 갇혔습니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상당수가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서 문을 나선 이들을 한국 교회는 출옥성도라 불렀습니다.
출옥한 이들은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기선 목사를 비롯한 20여 명은 평양 산정현교회에 약 두 달간 머물며 간증과 사경회를 이어 갔습니다. 산정현교회는 주기철 목사가 시무하다 강단에서 쫓겨난 교회였습니다. 목사를 잃은 그 교회에, 같은 감옥에서 살아 나온 이들이 모인 것입니다.
1945년 9월 4일, 그 교회에서 평양노회 임시노회가 열렸습니다. 이기선 목사와 채정민 목사의 주도로 사흘간 금식하며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하는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9월 20일경, 한국 교회 재건을 위한 기본원칙이 발표됐습니다.
원칙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목사와 장로 등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신사에 참배했으므로, 권징의 절차를 밟아 통회하고 정화한 뒤에 다시 교역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이 감옥 밖에 있던 사람들에게 요구한 내용이 아닙니다. 교회 전체가 함께 지은 죄를 교회 전체가 함께 씻고 다시 시작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원칙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원칙을 그대로 실시하려는 평양 산정현교회와 선천·신의주·강계 등지의 교회 30여 곳이 별도로 조직을 구성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갈등이 이후 한국 장로교에 남긴 파장은 그 자체로 따로 다뤄야 할 큰 주제이므로, 오늘은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그리고 북한 지역에서의 교회 재건 시도는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끝내 좌절됐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해방된 그날, 가장 큰 대가를 치른 사람들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이 회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고난을 내세울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교회의 잘못을 정면으로 지목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라, 교회가 자기 죄를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살아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편 51:17). 자유를 얻은 다음 무엇을 먼저 말하는가로 그 공동체의 됨됨이가 드러납니다. 81년 전 그들이 먼저 회개를 말했다는 사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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