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향한 흔한 공격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성경 목록은 4세기 교회 권력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문서만 골라 만든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문서는 없앴다는 것입니다. 소설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널리 퍼진 주장이라 답할 가치가 있습니다.
반론을 가장 강한 형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초기 기독교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문서가 돌아다녔다. 그런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황제와 주교들이 모여 어떤 책을 성경으로 삼을지 결정했고, 나머지는 이단으로 몰려 사라졌다. 그러니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책이 아니라 권력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인정할 것부터 인정하겠습니다. 목록이 확정되기까지 300년 이상이 걸린 것은 사실입니다. 일부 문서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교회가 권력을 쥔 뒤 반대 문헌을 억압한 일도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것을 부인하면서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반론의 뼈대는 사실관계에서부터 무너집니다.
첫째, 니케아 공의회는 성경 목록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325년 그 회의의 의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정경 문제는 안건에 없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신약 27권 목록이 문헌에 처음 명시된 것은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가 자기 교구 교회들에 보낸 부활절 서신에서였고,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가 이를 확인했습니다. 널리 퍼진 통설은 연대부터 틀렸습니다. 틀린 연대 위에 세운 결론은 검토할 필요도 없습니다.
둘째, 목록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140년경 마르키온이라는 사람이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 일부만 남긴 축소 목록을 내놓았을 때 교회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반발했다는 것은 이미 기준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2세기 후반의 무라토리 단편에는 오늘날 신약의 대부분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4세기 회의들이 한 일은 없던 목록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가 예배 때 읽어 온 문서들을 확인한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교회는 우리가 결정한다는 표현이 아니라 우리는 받아들인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권위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인정한 것입니다.
셋째, 탈락한 문서들은 검열당한 것이 아니라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기준은 단순했습니다. 사도들에게서 온 것인가, 여러 지역 교회가 실제로 예배에서 읽어 왔는가, 이미 받은 가르침과 어긋나지 않는가입니다. 이른바 잃어버린 복음서로 불리는 문서들은 대부분 사도 시대에서 한참 떨어진 뒤에 나타났고, 특정 집단 안에서만 유통됐습니다. 시기와 출처를 따지는 일은 은폐가 아니라 검증입니다.
성경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누가복음 1:3-4). 누가는 자기가 목격자들의 증언을 조사해서 순서대로 정리했다고 밝히고, 그 목적이 이미 들은 내용을 확인시키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검증받기를 거부하는 문서의 태도가 아닙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성경 목록은 황제가 정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확인한 것이며, 그 확인은 이미 백 년 넘게 사용돼 온 관행을 문서로 정리한 작업이었습니다. 확정에 오래 걸렸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 과정이 졸속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손에 든 책은 누군가 골라 준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교회가 받아서 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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