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잃은 여자 셋이 길 위에 서 있습니다. 한 사람은 돌아섰고 한 사람은 남았습니다. 룻기 1장은 남은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흉년을 피해 유다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으로 건너간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땅에서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이 모압 여자와 결혼했으나 그 아들들마저 죽었습니다. 남은 사람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 여자 셋뿐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자기에게는 그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냉정한 말이 아니라 정직한 말이었습니다. 며느리 오르바는 울며 작별했고 성경은 그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돌아가는 것이 당시로서는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룻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기 1:16-17).
이 말에서 눈여겨볼 것은 순서입니다. 룻은 감정을 먼저 말하지 않았습니다. 갈 곳과 머물 곳, 소속과 신앙, 그리고 죽어서 묻힐 자리까지 차례로 말했습니다. 잠깐의 동정이 아니라 남은 생애 전부를 걸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가 따라나선 곳은 자기에게 아무 연고도 없는 땅이었고,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이방 여인이라는 시선과 가난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을 좋은 것을 받는 통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룻이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시점은 모든 것을 잃은 뒤였습니다. 받을 것이 없는 자리에서 내린 결정이었기에 그 고백은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이 결정을 남편을 잃은 여자의 딱한 사정으로 기록하지 않고 이스라엘 역사의 한 줄기로 기록합니다. 남는 쪽을 택한 사람의 선택이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오늘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가족을 잃었거나, 일자리를 잃었거나, 있던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입니다. 사람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때는 장례 첫 주이고, 가장 견디기 힘든 때는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간 그다음입니다. 오늘 그 사람에게 연락 한 번 해 보십시오. 위로의 말을 잘 고르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입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돌아설 수 있었는데 남기를 택한 룻의 고백을 오늘 다시 읽습니다. 저희도 받을 것이 없는 자리에서 주님을 주님이라 부르게 하옵소서. 사람들이 다 흩어진 뒤에 남아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잠깐의 동정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마음을 주옵소서. 지금 상실 가운데 있는 이들 곁에 저희를 보내 주시고, 저희의 연락 한 번이 그들에게 하루를 더 견딜 힘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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