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여성을 이천 년 동안 눌러 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성경에 여자는 조용하라는 구절이 있고, 교회사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결정에서 배제됐다는 것입니다. 이 비판은 가볍게 흘려보낼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강한 형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2절은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합니다. 창세기에서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고, 죄의 책임도 먼저 짊어집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교회는 여성의 교육과 재산, 발언권에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여성 종속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한 종교라는 결론입니다.
인정할 것부터 인정하겠습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여성이 부당하게 다뤄진 일은 실제로 있었습니다. 성경 몇 구절을 문맥 없이 떼어 내 가정 폭력을 감내하라고 가르친 사례, 여성을 유혹의 근원으로만 취급한 설교가 존재했습니다. 이것은 변호할 일이 아니라 회개할 지점입니다. 다만 그 잘못이 성경 자체의 가르침인지는 따로 물어야 합니다.
첫째, 복음서의 기록 방식을 보십시오. 네 복음서는 모두 부활의 첫 목격자를 여성으로 기록합니다. 1세기 지중해 사회에서 여성의 증언은 공적으로 낮게 취급됐습니다. 없는 사실을 꾸며 사람들을 설득하려던 사람들이었다면, 굳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증인을 이야기의 출발점에 세울 이유가 없습니다. 불리한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은 이 기록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옮긴 것임을 시사합니다.
둘째, 초대교회의 실제 명단을 보십시오.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뵈뵈를 교회의 일꾼으로 소개하며 그를 돕도록 부탁합니다. 사도행전 16장의 루디아는 자기 집을 첫 유럽 교회의 거점으로 내놓습니다. 브리스길라는 남편과 함께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히 풀어 줍니다. 여성을 침묵시키는 것이 이 공동체의 원칙이었다면 이런 이름들이 남아 있을 리 없습니다. 직분과 질서에 관한 해석은 교단마다 다르며 그것은 별도의 논의입니다. 여기서 다루는 물음은 여성이 하나님 앞에서 열등한 존재로 규정됐는가입니다.
셋째, 역사의 실제 결과를 보십시오. 조선에서 여성이 처음 학교에 들어간 것은 1886년 이화학당이었고, 여성이 처음 자기 몸을 맡길 수 있는 병원을 얻은 것은 1887년 정동의 여성 전용 병원이었습니다. 둘 다 선교사가 세웠습니다. 이화학당의 초기 학생 가운데 한 명은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900년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습니다. 여성을 억누르는 것이 이 신앙의 본질이라면, 왜 그 신앙이 들어간 자리마다 여학교와 여성병원이 먼저 생겼는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의 기준은 처음부터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남자와 여자는 같은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8). 신분과 성별로 사람의 값을 매기던 세계에 던져진 문장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교회가 여성을 부당하게 대한 사례는 실재하며 그것은 인정하고 고쳐야 할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 잘못은 성경을 따른 결과가 아니라 성경을 어긴 결과였습니다. 부활의 첫 증인, 초대교회의 명단, 선교가 세운 여학교와 여성병원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가치는 성별이 아니라 창조주의 형상에서 나옵니다. 이 근거 위에 서 있는 신앙은 여성을 누르는 힘이 아니라, 눌린 자리에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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