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로드, 심판 없는 종말의 잿빛

루카 · 2026.08.07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면입니다. 종말 이후를 그린 이 소설이 왜 위로가 되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성경과 갈라지는지 짚어 보려 합니다.

로드는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가 2006년 9월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그해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을, 이듬해 퓰리처상 소설 부문을 받았습니다. 국내에는 2008년 문학동네에서 정영목의 번역으로 나왔고, 2009년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매카시는 예순이 넘어 얻은 아들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다고 알려졌고, 책머리에 아들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남겼습니다.

작품의 설정은 단순합니다. 지구에 무언가 큰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그 원인을 끝까지 밝히지 않습니다. 핵전쟁인지 충돌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남은 것은 결과뿐입니다. 도시는 타 버렸고 하늘은 재로 덮여 한낮에도 뿌옇습니다. 식물도 동물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이 남쪽 바다를 향해 걸어갑니다. 길에서 만나는 무리 가운데는 사람을 잡아먹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뿐입니다. 아버지는 자신들을 좋은 사람들이라 부르고, 그 증거로 사람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듭니다. 문명이 사라지자 도덕은 그 한 줄까지 줄어들었습니다. 불을 옮긴다는 말은 그 마지막 한 줄을 아들에게 넘겨주겠다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인 채로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는 깊이 공감할 만합니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은 계산부터 합니다. 무엇을 챙기고 누구를 버릴지 따집니다. 이 소설은 그 계산을 거부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만 표현됩니다. 자기 몫의 통조림을 아들에게 미는 손, 밤마다 아들의 숨소리를 확인하는 습관 같은 것입니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 주는 힘에서 이 작품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갈라지는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매카시의 종말에는 심판이 없습니다. 누가 왜 이 세계를 끝냈는지 알 수 없으니, 잘못을 물을 대상도 없고 바로잡힐 것도 없습니다. 남은 것은 의미 없는 소멸을 잠시 늦추는 인간의 온기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위로는 아름답지만 뿌리가 없습니다. 불은 옮겨지지만 어디에 도착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종말은 정반대입니다. 끝은 무너짐이 아니라 정리이고, 정리 뒤에 회복이 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요한계시록 21:5). 심판이 있다는 말은 무서운 소식이면서 동시에 좋은 소식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억울함이 끝내 밝혀진다는 뜻이고, 재가 된 세상이 그대로 방치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자가 없는 종말이야말로 가장 절망적인 종말입니다.

이 소설을 이렇게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엇을 물려주려 하는지 끝까지 따라가 보십시오. 그리고 다 읽은 뒤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무엇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려고 붙들고 있는가. 그것은 꺼지면 그만인 불인가, 아니면 새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