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

알렌, 칼에 찔린 왕비의 조카를 살리다

루카 · 2026.08.06

루카저널은 한국 교회를 세운 사람들의 발자취를 순서대로 싣고 있습니다. 세 번째 자리는 미국인 의사 호러스 뉴턴 알렌입니다. 조선에서 복음이 처음 통과한 문은 설교단이 아니라 수술대였습니다. 정변의 칼에 쓰러진 한 사람을 살린 일이 그 문을 열었습니다.

알렌(1858~1932, 한국 이름 안련)은 미국 오하이오의 마이애미의과대학에서 의사 자격을 얻고 중국 상하이에 의료 선교사로 파송됐습니다. 그는 1884년 6월 조선에 의사가 필요한지 타진해 선교본부의 승인을 받았고, 9월 6일 가족과 상하이를 떠나 9월 20일 제물포에 도착했습니다. 이틀 뒤 서울에 들어왔고, 다음 날인 9월 23일 미국공사관 의사로 임명됐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는 이로써 조선에 처음으로 머물러 사는 선교사가 생겼다고 기록합니다.

신분이 중요합니다. 당시 조선에서 선교는 허락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가 아니라 공사관 의사로 들어왔습니다. 앞서 토마스가 성경을 건네고 죽은 지 열여덟 해, 국경 너머에서 한글 성경이 만들어지던 무렵의 일입니다.

그해 12월 4일, 우정국 낙성식 자리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우정국은 조선이 막 세운 근대 우편 기관입니다. 축하 연회 도중 민영익이 칼을 맞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왕비 민씨의 조카였고, 급진 개화파와 대립하던 쪽의 실력자였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적 대립의 한복판에 있던 인물이며, 미국인 의사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끼어들 이유가 없는 자리였습니다.

알렌은 밤새 그의 곁을 지키며 서양 외과 의술로 치료했고, 민영익은 살아났습니다. 이 한 번의 치료가 조선 정부와 서양 의학, 그리고 서양 선교사 사이의 관계를 바꿔 놓았습니다. 알렌은 고종의 시의, 곧 임금을 진료하는 의사가 됐습니다.

그는 이 신뢰를 개인의 자리를 얻는 데 쓰지 않고 병원을 세우자는 건의로 돌렸습니다. 조선 정부는 1885년 4월 서울 재동에 서양식 병원을 열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널리 은혜를 베푼다는 뜻의 광혜원이었고, 문을 연 지 열이틀 만에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뜻의 제중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입니다. 의사학 연구에 따르면 병원 자리는 갑신정변으로 역적이 된 홍영식의 옛집이었습니다. 정변의 칼자국이 남은 자리가 사람을 살리는 자리로 바뀐 셈입니다.

알렌이 개원 1주년에 작성한 제중원 1차년도 보고서는 1885년 4월 10일부터 이듬해 4월 10일까지의 활동을 담고 있으며, 그가 발급한 진단서와 함께 2009년 국가 지정 문화재로 등록됐습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이 무슨 병을 앓았는지 알려 주는 사료이기도 합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민영익을 치료한 지 넉 달 뒤인 1885년 4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에 닿았습니다. 언더우드가 사역을 시작한 곳이 바로 제중원이었습니다. 같은 해 스크랜턴이 잠시 알렌을 도왔고, 6월에는 헤론이 합류했습니다. 한 사람의 진료가 만든 통로 위로 뒤이은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 들어온 것입니다.

이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복음은 말이 막힌 곳에서 손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조선 정부가 신앙을 허락하지 않았을 때, 상처를 꿰매고 열을 내리는 일이 먼저 허락됐습니다. 교회가 사회에서 말할 자리를 잃었다고 느낄 때 확인할 것은 논리가 아니라 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가복음 2:17). 우리가 이어받을 유산은 여기 있습니다. 아픈 사람 곁으로 가는 일이 곧 문을 여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