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향한 비판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틀린 사람이 되고, 틀린 사람을 향한 멸시와 폭력은 시간문제라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폭력을 근거로 들면 이 주장은 상당히 강해집니다. 진지하게 답할 가치가 있는 반론입니다.
먼저 인정할 것부터 인정하겠습니다. 교회가 권력을 쥐었던 시기에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강제하고 해친 일은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것은 변호할 대상이 아니라 회개할 지점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그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다음 짚을 것은 논리의 층위입니다. 진리 주장이 배타적인 것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적대적인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둘을 붙여 놓는 것이 이 반론의 핵심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종교가 결국 같다는 주장도 배타적입니다. 그 주장은 자기 종교가 유일하다고 믿는 수많은 신앙인의 확신을 틀렸다고 판정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장이든 무언가를 참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반대는 거짓이 됩니다. 그러므로 배타성 자체는 기독교만의 특징이 아니라 주장이라는 것의 성질입니다. 문제는 배타적 확신을 가진 사람이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초기 교회는 로마 제국에서 박해받는 쪽이었지 박해하는 쪽이 아니었습니다. 원형경기장에서 죽어 가던 신자들이 로마에 보복 조직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오히려 전염병이 돌 때 도시를 떠나지 않고 남아 환자를 돌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배타적 확신을 가진 공동체가 300년 가까이 권력 없이 존재하면서 택한 방식이 그것이었습니다.
역사에서 폭력이 나타난 시점을 보면 방향이 보입니다. 교회가 박해받을 때가 아니라 권력을 쥐었을 때 폭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원인은 신앙의 배타성이 아니라 권력의 남용 쪽에 있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맞습니다. 그리고 그 남용을 비판할 근거를 기독교인은 자기 성경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답은 두 구절에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6). 동시에 성경은 그 소망을 묻는 사람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베드로전서 3:15) 대답하라고 명령합니다. 확신은 양보하지 않되 태도는 온유하라는 것입니다. 이 둘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배타성은 모든 진리 주장의 성질이지 기독교의 결함이 아닙니다. 혐오는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힘으로 관철하려 할 때 나옵니다. 기독교의 창시자는 미움을 명령한 적이 없고 원수를 위한 기도를 명령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확신하면서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모순이 아니라, 이 신앙이 처음부터 요구해 온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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