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저널은 한국 교회를 세운 사람들의 발자취를 순서대로 싣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자리는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와 의주 사람 서상륜입니다. 조선에 선교사가 공식으로 들어오기 전에 한글로 옮겨진 성경이 먼저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 책을 만든 사람과 그 책을 지고 들어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존 로스(1842~1915)는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의 파송으로 1872년 만주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자리 잡은 영구는 만주의 개항장이었습니다. 로스는 1874년 고려문으로 갔습니다. 고려문은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서 정해진 시기에만 통행이 허락되던 국경 무역지입니다. 조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조선 사람이 나오는 곳으로 간 것입니다. 1876년 봄 두 번째 방문에서 그는 의주 출신 상인 이응찬을 만나 조선말을 배웠고, 이듬해 서양인을 위한 조선어 학습서를 펴냈습니다.
번역 방식이 중요합니다. 대한성서공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번역자들이 한문 신약성경을 보며 우리말로 옮기면 로스와 동료 매킨타이어가 그 번역문을 그리스어 개역본과 영어 개역본에 일일이 대조해 고치는 순서였습니다. 즉 이 성경은 서양인이 혼자 만든 책이 아닙니다. 실제로 문장을 만든 사람은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서상륜 같은 의주 출신 조선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하늘과 님에서 온 우리말을 택한 것도 이 번역에서 처음이었습니다.
1879년, 만주 영구에서 의주 출신 청년들이 매킨타이어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국인 개신교의 첫 세례로 기록되는 일입니다. 1882년에는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각각 삼천 부씩 인쇄됐고, 1887년 신약 전체가 예수셩교젼셔라는 이름으로 완성됐습니다.
서상륜(1848~1926)은 그 한복판에 있던 사람입니다.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열세 살에 부모를 잃고 의주와 만주를 오가며 홍삼 장사를 했습니다. 1878년 영구에서 장티푸스로 사경을 헤매던 그를 매킨타이어가 돌봤고, 회복한 뒤 그는 신자가 됐습니다. 그해 로스를 만나 어학 선생 겸 번역인이 됐습니다. 한문과 한글에 밝았고 목활자를 파는 기술까지 있어 번역만이 아니라 조판과 인쇄에도 참여했습니다. 로스는 그가 궁중에서 쓰는 말을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평가했습니다.
1882년 로스는 서상륜에게 세례를 주고 영국성서공회의 첫 권서로 파송했습니다. 권서는 성경을 지고 다니며 팔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에 닿기 두 해 전의 일입니다. 1883년 그는 성경을 지고 국경을 넘다 적발돼 의주 감옥에 갇혔습니다. 의주부 집사이자 교인이던 김효순의 도움으로 빠져나왔지만, 전도한다는 소문이 관가에 알려지자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장연 솔내 마을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형제가 세운 것이 한국인이 스스로 세운 첫 개신교회입니다. 설립 연도는 사료마다 1883년에서 1885년 사이로 갈려 지금도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선교사가 세워 준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열매는 서울에서도 드러났습니다. 1887년 새문안교회가 설립될 때 창립 교인 열네 명 가운데 열세 명이 그의 전도로 신자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1891년 마펫과 게일의 서북 지역 여행을, 1892년에는 배위량의 경상도 여행을 도왔습니다. 선교사들이 걸어간 길 앞에 이 사람의 발자국이 먼저 찍혀 있었던 셈입니다. 1926년 솔내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는 장로회 총회장으로 치러졌고, 1938년 그의 묘에 총회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빛을 비추어 깨닫게 하나이다(시편 119:130). 우리가 이어받을 유산은 분명합니다. 복음은 남의 말로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글자, 우리 문장으로 옮겨졌고, 그 일을 감당한 손은 상인과 약재상과 활자공의 손이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