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LOGETICS

AI가 생각하면 인간은 특별하지 않은가

루카 · 2026.08.03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인간의 지능이 특별하다고 여겨졌던 이유는 그것을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기계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논증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은 결국 계산 과정일 뿐이고, 영혼이나 하나님의 형상 같은 개념은 설명을 위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이 따라옵니다.

이 주장은 진지하게 다뤄야 합니다. 가장 강한 형태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어떤 능력을 물리적 장치가 재현할 수 있다면, 그 능력을 근거로 삼는 특별함은 모두 무너진다. 그리고 인간 정신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물리적 과정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관찰됩니다. 뇌를 다치면 성격이 바뀌고 기억이 사라집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사고가 몸과 무관한 어떤 유령의 작용이라는 식의 설명은 성경의 가르침도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말합니다. 몸과 정신을 갈라놓는 쪽은 오히려 고대 그리스 철학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으로 건너뛰기 전에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첫째는 흉내와 이해의 차이입니다. 철학자 존 설은 1980년에 이른바 중국어 방이라는 생각 실험을 내놓았습니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방 안에서 규칙표만 보고 한자를 조합해 내보내면, 밖에서는 그가 중국어를 아는 것처럼 보인다는 설정입니다. 결과가 같다고 해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이 논변에 대한 반박도 많습니다. 다만 반박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출력이 같으면 내면도 같다는 주장이 아직 증명된 적 없는 가정임을 보여 줍니다.

둘째는 능력과 존엄의 차이입니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의 가치가 지능이나 생산성에서 나온다고 하면, 그 기준은 반드시 사람에게 되돌아옵니다. 계산을 더 잘하는 기계가 사람보다 귀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태아, 의식이 흐려진 노인, 중증 장애를 가진 이웃의 존엄이 먼저 무너집니다. 능력을 존엄의 근거로 삼는 순간, 능력이 적은 사람부터 값이 매겨집니다.

성경은 사람의 존엄을 능력에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여기서 형상은 성능 목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마주 서서 부름을 받고 응답하며, 그분을 대신해 세상을 돌보도록 세워졌다는 관계와 위임을 가리킵니다. 이 근거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와 무관하게 유지됩니다.

그래서 기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자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만든 자가 자신이 만든 것에서 존엄을 받아 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자기를 닮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이 만드는 자의 형상을 지녔다는 오래된 주장과 잘 어울립니다.

정리하면 세 가지입니다. 기계가 결과를 흉내 낸다는 것과 기계가 이해한다는 것은 아직 같은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존엄은 지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근거하므로 성능 경쟁으로 반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존엄의 근거를 능력으로 옮기는 순간 가장 먼저 값이 깎이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약한 사람입니다.

인공지능 앞에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초라함이 아닙니다. 사람의 값이 애초에 사람이 정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