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

구텐베르크, 성경과 면죄부를 찍은 기계

루카 · 2026.08.03

1450년대 독일 마인츠에서 한 사람이 금속활자 인쇄술을 완성했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입니다. 그가 늦어도 1455년까지 찍어 낸 성경은 한 면이 두 단, 한 단이 42줄로 짜여 있어 42행 성경이라 불립니다. 그런데 같은 인쇄소에서 나온 인쇄물 목록에는 성경만 있지 않았습니다.

42행 성경은 약 180부가 인쇄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중 오늘까지 남아 있는 것은 48부이며, 양피지에 찍은 것이 12부, 종이에 찍은 것이 36부라고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정리하고 있습니다. 인쇄본이라고 해서 값이 싼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판매가는 30굴덴 정도로, 기관 서기 한 사람의 3년치 봉급에 해당했다고 전해집니다. 기술이 생겼다고 해서 성경이 곧바로 모든 사람의 손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구텐베르크 자신의 말년도 성공담과 거리가 멉니다. 그에게 자금을 댄 요한 푸스트가 1454년 소송을 제기했고, 구텐베르크는 패소했습니다. 이 재판의 기록은 1455년 11월 6일자 헬마스페르거 공증문서로 독일 괴팅겐대학 도서관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판결로 인쇄 설비의 관리권을 넘겨주게 됩니다. 발명한 사람이 발명의 열매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그의 인쇄소가 찍은 것 중에는 라틴어 문법서와 달력, 그리고 면죄부도 있었습니다. 면죄부는 죄의 형벌을 감면받는다며 당시 교회가 발행하던 문서입니다. 반세기 뒤 종교개혁이 정면으로 문제 삼게 되는 바로 그 물건입니다. 다시 말해 같은 기계가 성경도 찍고 면죄부도 찍었습니다. 기술은 어느 쪽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인쇄술은 빠르게 퍼졌습니다. 구텐베르크의 견습공들을 통해 1464년 로마로 전해졌고, 1500년 무렵에는 유럽 260개 도시에서 인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확산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의 문서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독일 전역으로 퍼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확산로를 타고 면죄부도 함께 퍼졌습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가 들을 증언이 있습니다. 기술은 방향을 정해 주지 않습니다. 인쇄기는 성경을 퍼뜨린 도구인 동시에 부패한 관행을 대량으로 퍼뜨린 도구였습니다. 무엇이 남을지를 결정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를 어느 쪽에 붙인 사람들의 목적이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 앞에도 새로운 인쇄기가 놓여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설교문 초안을 만들고 영상을 찍어 내는 일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 도구가 복음을 전에 없이 멀리 실어 나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동시에 값싼 위로와 검증되지 않은 주장도 같은 속도로 실어 나를 수 있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로마서 6:13)

바울이 무기라는 말을 쓴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무기는 스스로 겨눌 곳을 고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유산은 새 기술을 두려워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것을 무엇에 붙일지 매번 정직하게 결정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