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길리아드, 쇠락한 마을에 남은 목사

루카 · 2026.08.02

일흔이 넘은 목사가 일곱 살 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가 평생 한 일은 아이오와의 작은 마을 하나에서 설교한 것뿐이었습니다. 매릴린 로빈슨의 소설 《길리아드》는 그 편지 한 권입니다.

작가는 1943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태어났습니다. 1980년 첫 소설 《하우스키핑》을 낸 뒤 20여 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다가, 2004년 두 번째 소설로 《길리아드》를 발표했습니다. 그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이듬해 퓰리처상 소설 부문을 받았습니다. 화자는 아이오와주 길리아드라는 소읍의 회중교회 목사 존 에임스입니다. 길리아드는 구약에 나오는 지명에서 따왔고, 노예제 폐지 운동으로 알려진 실제 도시가 모델로 언급됩니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한 가지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는 평생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에임스는 유명해지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키우지 못했습니다. 마을은 그가 사는 동안 계속 작아졌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한 마을에서 평생 한 설교와, 아들에게 남기는 이 편지뿐입니다. 성과로 계산하면 그의 인생은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소설은 이 삶을 실패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자리를 오래 지킨 사람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 줍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자신에 이르는 3대의 목회를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젊어서 지은 죄가 나이 들어 어떻게 돌아오는지를, 그리고 용서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런 것은 오래 머문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3년 만에 자리를 옮기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기준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성경이 사역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규모가 아닙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도전서 4:2). 청지기에게 묻는 것은 얼마나 늘렸느냐가 아니라 맡은 것을 지켰느냐입니다. 이 기준은 큰 교회를 정죄하지도, 작은 교회를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같은 질문을 양쪽에 똑같이 던질 뿐입니다.

다만 분별할 지점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성장은 필요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으면 안 됩니다. 에임스가 그 자리에 있은 것은 도피가 아니라 감당이었습니다. 그는 갈 곳이 없어서 남은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자기 몫으로 받았기 때문에 남았습니다. 게으름과 충성은 겉모습이 비슷할 때가 있지만 전혀 다른 것입니다.

또 하나, 이 소설은 교리서가 아닙니다. 로빈슨은 은혜와 용서를 깊이 다루지만, 회심과 결단의 순간을 전면에 세우지는 않습니다. 소설이 주는 위로에 머물지 말고 성경으로 확인하며 읽어야 할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오늘 한국 교회가 읽어야 할 소설입니다. 사람이 줄어드는 지역에서 문을 여는 예배당들이 실제로 있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을 어떤 언어로 읽어야 하는지를 이 책이 알려 줍니다.

읽으신 뒤 한 가지만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를 감당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견디고만 있습니까.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