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영광의 문, 그 죽음은 낭비였나

루카 · 2026.08.01

스물두 살 청년이 1949년 10월 28일 일기에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어차피 지킬 수 없는 것을 내주고 결코 잃을 수 없는 것을 얻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는 뜻의 문장이었습니다. 6년 뒤 그는 스물여덟에 죽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의 《영광의 문(Through Gates of Splendor)》은 그 6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한 책입니다.

일기의 주인은 짐 엘리엇(1927~1956)입니다. 저자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1926년생으로, 그의 아내였습니다. 책은 남편이 죽은 이듬해인 1957년에 나왔습니다.

사건 자체는 짧습니다. 짐 엘리엇과 네이트 세인트, 에드 맥컬리, 피트 플레밍, 로저 유더리언 다섯 사람은 1956년 1월 3일 에콰도르 쿠라라이 강가의 모래톱에 경비행기로 내렸습니다. 그들이 만나려 한 부족은 당시 아우카로 불렸고, 스스로는 와오라니라고 불렀습니다. 외부인을 창으로 찔러 죽인 전력이 여러 차례 있는 부족이었습니다. 1월 6일 첫 접촉은 우호적이었습니다. 이틀 뒤인 1월 8일, 다섯 사람 모두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졌을 때 세상이 던진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낭비 아닌가. 앞길이 창창한 청년 다섯이, 문자도 없는 부족 몇십 명을 만나려다 한나절에 죽었습니다. 남은 것은 미망인 다섯과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계산법에서 답은 명백해 보입니다.

《영광의 문》이 특별한 이유는 저자가 이 질문에 감정으로 맞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남편을 잃은 사람이 쓴 책인데도 비장한 수사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자료를 내놓습니다. 다섯 사람의 일기와 편지, 무선 교신 기록, 그리고 그들이 몇 년에 걸쳐 언어를 배우고 비행기로 선물을 떨어뜨리며 접촉을 준비한 과정입니다. 독자는 영웅담이 아니라 기록을 읽게 됩니다.

그 기록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들이 무모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짐 엘리엇은 1952년 에콰도르에 들어가 스페인어와 키추아어를 익히며 몇 년을 보냈습니다. 네이트 세인트는 항공 선교사로 정글 전역을 오갔습니다. 이들은 위험을 몰라서 간 것이 아니라, 위험을 계산한 뒤에 갔습니다. 위험과 무모함은 다릅니다. 이 책이 종종 젊은이의 결단을 부추기는 감동 소재로만 소비되는데, 정작 책이 보여 주는 것은 오랜 준비와 반복된 재검토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모래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몇 년 뒤 엘리자베스는 어린 딸 발레리를 데리고, 네이트 세인트의 누나 레이첼 세인트와 함께 남편을 죽인 그 부족에게 들어가 함께 살았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앞세운 전략이 아니라 그저 들어가 산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와오라니 사람들 다수가 신앙을 갖게 됐습니다.

여기서 성경의 기준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낭비냐 아니냐를 가르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기준입니다. 이 땅에서 쓸 수 있는 시간만을 자산으로 계산하면 그 죽음은 손실입니다. 잃을 수 없는 것을 자산 목록에 넣으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짐 엘리엇이 1949년 일기에 적은 것이 정확히 그 계산이었습니다.

다만 분별할 것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순교를 목표로 삼으라는 권유가 아닙니다. 다섯 사람은 죽으러 간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갔습니다. 죽음은 목적이 아니라 감수한 위험의 결과였습니다. 이 구별을 놓치면 헌신이 아니라 자기 파괴가 됩니다.

한국어판이 나와 있으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00쪽 남짓이라 부담도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한 가지만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무엇을 자산으로 계산하고 있는가. 그 목록에 잃을 수 없는 것이 하나라도 들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