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담대하라는 말은 격려가 아니라 명령으로 주어집니다. 여호수아 1장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에는 반드시 근거가 붙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이끌던 지도자가 죽고, 그 자리를 이어받는 순간에 이 말씀이 주어집니다. 앞에는 요단강이 있고 건너편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들이 있었습니다. 두려워할 조건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여호수아 1:6). 같은 명령이 이 짧은 단락 안에서 반복됩니다. 그런데 명령만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9절은 이렇게 맺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여호수아 1:9).
순서를 보십시오. 담대하라는 요구가 먼저 오고, 함께 있겠다는 약속이 뒤에 옵니다. 문장의 무게는 뒤쪽에 실려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정신력의 주문이 아니라, 근거가 확보되었으니 그에 맞게 행동하라는 통보입니다. 성경의 담대함은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다른 분에게 기대는 담대함입니다.
근거가 하나 더 있습니다. 8절은 이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기록된 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담대함의 재료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모르는 사람은 용감해질 수 없습니다. 확신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만용이고, 기준을 알고 그대로 서는 것이 용기입니다.
그래서 겸손과 담대함은 반대말이 아닙니다. 어제 우리는 판단의 기준을 자기 밖에 두는 것이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기준이 내 밖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반대할 때도 그 기준을 옮길 이유가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오히려 물러서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 하루 한 가지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말하지 못하고 삼키고 있는 말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적어 보십시오. 아직 확신이 없어서라면 더 알아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서라면, 오늘 그 한 문장을 말할 차례입니다. 정중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는 연습을 오늘 한 번만 해 보십시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담대하라는 명령 앞에서 제가 먼저 두려움부터 세는 사람인 것을 압니다. 제 각오가 아니라 함께 계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근거로 서게 하옵소서. 말씀을 붙들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만용을 주지 마시고, 옳은 것을 알고 그 자리에 서는 용기를 주옵소서. 오늘 제가 삼켰던 한마디를 정직하게 꺼내게 하시고, 그 결과까지 주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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