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담대함이 순교가 아니라 경기 일정표 위에서 드러난 사례가 있습니다. 1981년 영화 불의 전차가 그린 스코틀랜드 육상 선수 에릭 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이 유력했던 종목의 예선이 주일에 열린다는 이유로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영화는 1924년 파리 올림픽을 배경으로 두 영국 선수를 나란히 따라갑니다. 한 사람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받은 멸시를 실력으로 갚으려는 해럴드 에이브러햄스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달린다고 말한 에릭 리들입니다. 두 사람 모두 달리지만 이유가 다릅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도 여기서 나옵니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리들은 1902년 중국 톈진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가 중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였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자란 그는 육상과 럭비 모두에서 뛰어났고,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100미터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초 일정이 발표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100미터 예선이 7월 6일 주일에 잡힌 것입니다.
그는 출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영국 언론과 여론의 반응은 거칠었습니다. 편협한 신앙인이라는 조롱과 나라를 저버린 사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논쟁하지 않았고, 예선이 열리던 그 주일에 파리의 한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에게는 대신 400미터 출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주 종목이 아니었으므로 기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경기 직전 팀의 한 동료가 쪽지를 건넸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거기에는 사무엘상 2장 30절의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7월 11일 결승에서 47초 6의 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 당시 기록 공인을 둘러싼 이견은 있지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종목에서 1위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앞서 200미터에서는 동메달을 땄습니다.
영화가 훌륭한 지점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금메달은 신앙을 지킨 대가로 주어진 보상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리들의 실제 삶은 그 해석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듬해 중국으로 건너가 교사이자 선교사로 살았고, 전쟁 중이던 1943년 일본군에 의해 수용소에 억류됐습니다. 그리고 광복을 몇 달 앞둔 1945년 그곳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흔셋이었습니다. 주일에 달리지 않기로 한 선택의 결말은 시상대가 아니라 수용소였습니다.
그의 결정을 오늘의 기준으로 융통성 없는 처사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계주에도 나가지 않아 당대에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글은 주일 성수의 구체적 방식을 모두가 그처럼 하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무엇을 걸었는지는 분명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평생 한 번뿐인 기회를,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자기 기준 때문에 내려놓았습니다. 담대함은 반대편이 강할 때가 아니라 잃을 것이 클 때 드러납니다.
영화는 198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네 개 부문을 받았습니다. 느린 화면에 흐르는 반젤리스의 음악으로도 유명합니다. 다만 다시 볼 때는 달리는 장면보다 달리지 않기로 결정한 장면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서라면 달리지 않을 수 있는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사무엘상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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