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이 한 문장으로 정리한 대목이 있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입니다. 오늘은 그 세 가지 중 마지막, 겸손하게 함께 걷는 것을 붙들겠습니다.
미가는 주전 8세기 남유다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가 본 사회는 겉으로 종교 활동이 활발했고, 안으로는 재판이 돈으로 거래되던 곳이었습니다. 6장은 법정 장면처럼 전개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상대로 소송을 여는 형식입니다.
백성의 대답이 인상적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느냐고 되묻습니다. 한 살 된 송아지면 되겠느냐, 천천의 양이면 되겠느냐, 강물처럼 많은 기름이면 되겠느냐, 내 맏아들까지 드려야 하느냐. 요구를 알고 싶은 질문이 아닙니다. 값을 흥정하는 질문입니다. 예물의 규모를 키우면 관계가 정리된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이미 보이셨다는 말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새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하라는 요구입니다.
세 가지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정의는 남에게 줄 것을 주는 일이고, 인자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도 선을 베푸는 일입니다. 마지막 항목은 이 두 가지를 누구와 함께 하느냐를 지정합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조심스럽게, 삼가 걷는다는 뜻에 가깝다고 설명됩니다. 앞서 걷는 이는 하나님이고, 사람은 그 걸음에 자기 속도를 맞춘다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자기를 깎아내리는 감정이 아닙니다. 판단의 최종 기준을 자기 밖에 두는 상태입니다. 자기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도 여전히 자기가 기준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 능력을 정확히 아는 사람도 기준을 하나님께 두면 겸손합니다.
오늘 하루 한 가지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가장 확신하는 판단 하나를 고르십시오. 직장의 결정이든 가정의 문제든 정치적 견해든 좋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서 나와 반대편에 선 사람의 근거를 세 줄로 적어 보십시오. 다 적은 뒤에도 결론은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세 줄을 쓰는 동안, 내 걸음이 누구의 걸음에 맞춰져 있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무엇을 더 드리면 되겠느냐고 묻는 저의 흥정을 멈추게 하옵소서. 이미 보여주신 것을 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답을 구하지 않게 하옵소서. 정의를 행할 힘과 인자를 베풀 마음을 주시고, 그 두 가지를 제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걸음에 맞춰 하게 하옵소서. 제가 확신하는 자리에서 특히 조심하게 하시고, 오늘 하루 주님보다 앞서 걷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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