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미·이란 재격돌, 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루카 · 2026.07.30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닷새간의 소강 상태를 깨고 다시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란이 요르단 주둔 미군 기지를 기습 공격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우리 차례라며 강력한 보복을 예고했습니다. 힘의 우위를 가진 쪽이 어디까지 응징해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놓였습니다.

사실부터 정리합니다. 미 중부사령부는 현지 시간 7월 28일 오후 5시 45분, 이란 시간으로는 29일 오전 1시 15분에 이란혁명수비대가 이란 본토에서 중동 주둔 미군을 겨냥해 다수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습니다. 발사된 미사일은 모두 요격됐습니다. 혁명수비대는 표적이 요르단의 무와파크 살티 공군기지와 중부사령부 지휘센터였다고 확인했습니다. 미국과 이란은 7월 24일부터 상호 공격을 멈춘 상태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하루 만에 나왔습니다. 그는 29일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이제 우리가 공격할 차례이며 이란을 매우 강력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폭스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는 욕설까지 섞어 응징 의지를 밝혔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이란이 전날 공격을 사과하면서 보복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도 전했습니다. 다만 어느 시점에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는 지켜보겠다며 여운을 남겼습니다. 연합뉴스와 파이낸셜뉴스, 헤럴드경제, 서울경제, 이투데이가 로이터와 폭스뉴스 보도를 인용해 함께 전했습니다.

전선은 이미 넓어지고 있습니다. 미군은 사우디아라비아군과 함께 이라크 안에 있는 친이란 무장세력 거점을 공습했습니다. 이집트 근해에서는 미국 소유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설비가 피격됐습니다. 로이터는 이란이 몇 주 안에 중국산 휴대용 대공미사일 발사대를 최대 400기까지 파키스탄을 경유해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라며 시진핑 주석을 겨냥해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쟁점은 응징의 수준입니다. 응징을 지지하는 쪽의 논리는 분명합니다. 미군 인명을 직접 겨냥한 공격에 대응하지 않으면 억제력이 무너지고 다음 공격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요격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다음에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아닙니다. 절제를 요구하는 쪽의 논리도 근거가 있습니다. 보복은 상승 나선을 만들고, 호르무즈 해협과 유가를 통해 세계 경제 전체에 비용을 전가하며, 민간 피해와 협상의 창을 함께 줄인다는 것입니다. 두 논리 모두 진지하게 다뤄야 합니다.

성경은 공권력의 응징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권세가 칼을 가진 것이 악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응징의 감정에 대해서는 다른 방향으로 말합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언 24:17). 갚는 일을 사람의 손에서 하나님께 옮기라는 요구도 함께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로마서 12:19). 응징을 금하는 말씀이 아니라, 응징을 사적인 만족의 문제로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겸손이 국가의 문제가 됩니다. 성경적 겸손은 약자의 체념이 아니라, 힘을 가진 쪽이 자기 판단을 최종 기준으로 삼지 않는 태도입니다. 차례가 왔다는 계산은 겸손의 언어가 아닙니다. 정당한 대응인가, 비례에 맞는가, 민간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기 힘보다 앞에 두는 것이 겸손입니다. 힘이 클수록 이 질문의 무게도 커집니다.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중동에 머무는 우리 국민과 현지 교회의 안전, 그리고 양측 결정권자들이 절제를 택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둘째, 우리 자신의 언어를 점검해 주십시오. 이제 우리 차례라는 문장은 국제 정치에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온라인의 논쟁에서도 우리는 같은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