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이기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적의 무기를 빼앗아 쓰는 것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그 상식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이야기입니다. 힘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힘을 버릴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J. R. R. 톨킨은 1892년에 태어나 1973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언어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 교수였습니다. 여덟 살 때 어머니를 따라 로마 가톨릭 교회에 입교한 뒤 평생 독실한 신앙을 지켰습니다. 옥스퍼드의 문학 모임 잉클링스에서 C. S. 루이스와 오랜 우정을 나누었고, 무신론자였던 루이스가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반지의 제왕》은 1954년부터 1955년 사이에 세 권으로 출간됐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절대반지가 있습니다. 이 반지는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힘을 지녔고, 그 힘을 원하는 이라면 누구든 손에 넣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반지가 주인을 바꾼다는 점입니다. 반지는 사용자를 강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를 잠식합니다.
작품의 결정적 장면은 전투가 아니라 회의장입니다. 엘론드의 회의에서 여러 종족의 대표들은 반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합니다. 인간의 대표 보로미르는 명확한 논리를 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무기가 필요하다, 적의 힘을 우리가 써서 적을 무너뜨리자. 대단히 합리적인 제안입니다. 그러나 회의는 반지를 쓰지 않고 파괴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길 수 있는 수단을 스스로 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거절의 목록입니다. 마법사 간달프도, 요정의 여왕 갈라드리엘도 반지를 받을 기회 앞에서 물러섭니다. 그들이 물러선 이유는 자신이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그 힘으로 대단한 선을 이루려 할 것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무너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선한 의도가 있으면 힘을 안전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장 집요하게 반박하는 믿음입니다.
결말은 더 냉정합니다. 반지를 짊어지고 산 정상까지 간 프로도는 마지막 순간에 반지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주인공조차 실패합니다. 반지가 파괴되는 것은 프로도의 의지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통해서입니다. 톨킨은 영웅의 승리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습니다.
읽을 때 구분할 것이 있습니다. 톨킨은 자신의 작품이 우화로 읽히는 것을 분명하게 거부했습니다. 반지는 무엇의 상징이고 프로도는 누구를 나타낸다는 식의 일대일 대응은 작가의 뜻과 다릅니다. 또한 톨킨은 가톨릭 신자였고, 이 작품은 신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가 신앙 위에서 쌓아 올린 통찰은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독자에게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성경도 같은 지점을 짚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신 세 번째 시험은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목적을 위해 힘을 받으라는 제안이었고,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라는, 힘의 관점에서는 완전한 실패로 보이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들은 대답도 같은 방향입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 12:9).
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에게 지금 반지가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그것을 쓰겠다고 말할 것인가. 그 대답이 너무 쉽게 떠오른다면, 그것이 바로 갈라드리엘이 물러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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