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비판하려면 먼저 전쟁이 나쁘다는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판단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신이 없어도 도덕은 성립하는가, 이것이 오늘 다룰 질문입니다.
무신론 쪽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도덕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다. 서로 돕는 무리가 더 잘 살아남았기 때문에 공감과 협력의 본능이 유전자에 남았다. 여기에 사회적 합의와 법이 더해져 오늘의 도덕이 만들어졌다. 그러니 신은 설명에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종교야말로 이단 처형과 정복 전쟁을 정당화하며 도덕을 왜곡해 왔다. 이 주장은 진지하고, 상당 부분 사실에 근거해 있습니다. 인류학과 진화생물학의 성과를 함부로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이 설명에는 성격이 다른 두 질문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왜 그렇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느낌이 왜 옳은가라는 질문입니다. 진화는 앞의 질문에 답합니다. 뒤의 질문에는 답하지 못합니다.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지적한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이 사실인가라는 진술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진술이 자동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공감 본능이 있다는 것은 사실 진술입니다. 그러므로 공감해야 한다는 것은 당위 진술입니다. 둘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진화가 우리에게 살인을 꺼리는 본능을 주었다는 사실은, 살인이 왜 잘못인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본능은 설명이지 근거가 아닙니다.
이 문제를 가장 정직하게 인정한 쪽은 오히려 무신론 철학자였습니다. 호주 출신 철학자 J. L. 매키는 객관적 도덕 가치라는 것이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주에 있는 다른 어떤 것과도 성질이 전혀 다른 기이한 존재일 것이라고 논증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이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즉 그는 객관적 도덕이 없다는 쪽을 택했습니다. 논리적으로 일관된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 결론을 끝까지 받아들이면, 학살을 비난하는 우리의 문장은 취향의 표현으로 격하됩니다.
현실은 그 결론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뉘른베르크 법정에 선 피고인들은 자국의 법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국가의 법보다 위에 있는 기준이 실재한다고 전제해야 합니다. 사회적 합의가 도덕의 최종 근거라면,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을 따른 사람을 처벌할 근거가 없습니다. 인류는 그 순간 합의를 넘어선 무언가에 호소했습니다.
성경은 그 무언가의 정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로마서 2:15).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옳고 그름을 감지하는 감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이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종교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지적은 정당합니다. 다만 그 지적조차 이미 도덕 기준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은 교회가 스스로 선포한 기준을 근거로 교회를 심판합니다. 그 기준을 없애면 비판할 자리도 함께 사라집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진화는 도덕 감각의 유래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 권위를 세우지는 못합니다. 합의는 법을 만들 수 있지만 법 위의 기준이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학살을 고발할 때 우리는 이미 사람 위에 있는 기준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을 준 분이 계시다면, 우리의 분노는 취향이 아니라 정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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