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73년이 되는 날입니다. 전쟁을 멈추는 일과 평화를 이루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로마서 12장은 바로 그 차이를 말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로마서 12:18).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21).
이 편지를 받은 로마 교회는 제국 안의 작은 소수였습니다. 갚을 힘이 있어서 참으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갚을 힘조차 없는 이들에게, 갚는 방식 자체를 바꾸라고 한 것입니다.
18절에는 조건이 둘 붙어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과 "너희로서는"입니다. 성경은 화목이 언제나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끝내 거부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내 몫의 책임은 끝까지 내 몫이라고 못박습니다. 상대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내가 문을 닫아도 된다는 허락이 되지는 않습니다.
바로 앞 19절은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정의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재판장을 바꾸라는 뜻입니다. 내가 심판자의 자리에 앉는 순간, 나는 상대와 같은 무기를 들게 됩니다. 그때 악은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로 옮겨 옵니다. 21절이 "악에게 지지 말고"라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보복은 승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악에게 방식을 넘겨준 패배입니다.
73년 전 이 땅에서 총성이 멎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평화가 아니라 정지 상태를 살아왔습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투지 않는다고 화목한 것이 아닙니다. 말을 섞지 않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정전이지 평화가 아닙니다.
오늘 하루, 마음속에서 아직 갚지 못한 셈이 남아 있는 사람 한 명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한 문장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순서는 마음이 먼저가 아니라 순종이 먼저입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가 멈춘 총성 앞에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멈춘 것이 곧 화해가 아님을 압니다. 우리에게 갚을 힘이 있을 때에도 갚지 않는 용기를 주옵소서. 저마다 마음에 남은 셈을 주님의 손에 옮겨 놓게 하시고, 오늘 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하옵소서.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이기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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