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미션 — 칼을 든 신부, 십자가를 든 신부

루카 · 2026.07.27

불의한 권력이 무고한 사람들을 짓밟을 때, 신앙인은 무기를 들어야 합니까 아니면 들지 말아야 합니까. 1986년 영화 '미션'은 이 질문을 두 인물에게 나누어 맡기고, 끝내 한쪽 손을 들어 주지 않습니다. 정전협정 73주년인 오늘 다시 볼 만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롤랑 조페 감독의 이 영국 영화는 1986년 제39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이듬해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습니다. 2007년 영국 교계지 처치 타임스가 뽑은 종교 영화 50편 목록에서는 1위에 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12월에 개봉했습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오보에 선율은 영화보다 더 널리 알려졌습니다.

배경은 1750년 마드리드 조약입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미의 국경선을 다시 그으면서, 예수회 선교사들이 과라니족과 함께 일궈 놓은 밀림 속 마을이 포르투갈령으로 넘어갑니다. 문제는 당시 포르투갈이 원주민 노예 사냥을 허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마을을 해체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교황청은 유럽에서의 교회 존립을 위해 그 명령을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길이 갈립니다. 가브리엘 신부는 성체를 들고 찬송을 부르며 행진하는 쪽을 택합니다. 노예상이었다가 회심해 신부가 된 멘도사는 다시 칼을 잡습니다. 그는 원주민들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칩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두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마을도 불탑니다.

관객이 답을 얻지 못한 채 극장을 나서게 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영화는 어느 쪽이 옳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자기 자리를 지키다 죽었다는 사실만 남겨 둡니다.

개혁주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짚어야 할 대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가톨릭 수도회의 이야기이고, 신학적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일 작품은 아닙니다. 원주민 개종 활동 자체에 대한 현대 학계의 비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장 날카롭게 겨누는 대상은 원주민도, 두 신부도 아닙니다. 조직의 존립을 위해 약자를 넘겨준 교회 지도부입니다. 교회가 세상 권력과 거래할 때 가장 먼저 지불되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이 영화는 두 시간에 걸쳐 보여 줍니다.

성경은 두 방향의 말씀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지키려 칼을 뽑은 제자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6:52). 동시에 성경은 국가가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기 위해 칼을 맡았다고 말합니다(로마서 13:4). 개인의 복수와 공권력의 집행은 다른 문제입니다. 영화 속 멘도사가 흔들리는 지점도 정확히 여기입니다. 그가 든 칼은 국가가 맡긴 칼이 아니라 자신이 다시 집어 든 칼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무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입니다. 밀림에서 죽은 두 신부인가, 서류에 서명한 추기경인가. 대개의 우리는 세 번째 자리에 있습니다. 소식을 전해 듣고 안타까워하다 잊는 자리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남기는 것은 그 세 번째 자리를 향한 조용한 고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