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

알렌과 제중원, 치료가 연 복음의 문

루카 · 2026.07.26

조선에 복음이 공식적으로 들어오기 전, 먼저 열린 문은 수술실이었습니다.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호러스 알렌(1858~1932)은 1884년 가을 조선에 들어왔고, 그해 12월 갑신정변에서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며 조선 왕실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1885년 4월, 조선 최초의 서양식 국립 병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선교사 신분은 위험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렌은 주조선 미국공사관 소속 의사라는 직함으로 활동했습니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 12월 4일, 개화파의 칼에 찔린 민영익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서울에 남은 서양 의사는 사실상 알렌뿐이었고, 그는 민영익의 집을 거의 매일 오가며 치료를 이어갔습니다.

민영익이 회복되자 고종은 알렌을 왕실 진료에 불렀습니다. 알렌은 이 신뢰를 개인의 지위가 아니라 병원 설립 건의로 연결했습니다. 고종의 윤허를 받아 1885년 4월 10일, 갑신정변으로 역적이 된 홍영식의 옛집에 광혜원이 세워졌습니다. 널리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같은 달 26일 제중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정확히 해야 합니다. 제중원은 조선 정부가 세우고 운영한 국립 병원이었고, 알렌은 설립을 건의하고 진료를 맡은 의사였습니다. 알렌 개인이 세운 병원이라는 통념은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다만 서양 의술의 효용을 조선 왕실에 실증해 병원 설립을 이끌어낸 사람이 그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제중원의 진료실은 곧 접촉점이 되었습니다. 1885년 5월부터 스크랜턴이, 6월에는 헤론이 합류했고, 이후 내한한 선교사들이 이 병원을 거쳐 조선 사회로 들어갔습니다. 제중원의 의학 교육 기능은 훗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이어졌고, 언더우드가 세운 연희전문학교와 1957년 합쳐져 오늘의 연세대학교가 되었습니다.

알렌에 대한 평가는 갈립니다. 그는 1887년 이후 외교관으로 전신해 주한 미국 공사까지 올랐고, 운산 광산 채굴권과 경인 철도 부설권 알선에 관여했습니다. 이를 두고 제국주의적 이권 확장을 도왔다는 비판과, 격동기 조선의 외교 통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공존합니다. 역사는 인물을 미화하지 않을 때 더 정직하게 증언합니다.

그럼에도 남는 사실이 있습니다. 복음의 문이 처음 열린 자리는 강연장이 아니라 병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돌보는 일이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 오늘 우리가 이어가야 할 유산은 말보다 먼저 사람의 고통 앞에 도착하는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