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왜 그 다섯인가

루카 · 2026.07.26

1714년 7월 20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아름답다던 다리가 무너지고 다섯 사람이 죽었습니다. 손턴 와일더의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1927)는 이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1928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재난 앞에서 인간이 던지는 가장 오래된 질문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사고를 목격한 프란치스코회 수사 주니퍼는 결심합니다. 하필 그 시각, 하필 그 다섯 사람이 다리 위에 있었던 이유를 밝혀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희생자들의 삶을 몇 해에 걸쳐 조사합니다. 신의 섭리를 자료로 증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그가 기대한 그림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섯 사람은 성인도 아니고 극악한 죄인도 아니었습니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 뒤늦게 화해를 시작한 사람, 이제 막 새 삶을 향해 떠나던 사람이 뒤섞여 있습니다. 죽음의 시점과 그들의 도덕적 상태 사이에서 깔끔한 인과관계는 끝내 발견되지 않습니다.

주니퍼의 결말은 씁쓸합니다. 그의 연구는 이단으로 판정받고, 책은 그와 함께 불태워집니다. 소설은 그를 조롱하지 않지만, 그의 방법이 실패했다는 사실도 감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사건 대장부처럼 계산해 맞추려는 시도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작업이었습니다.

개신교 신앙의 관점에서 이 실패는 중요한 지점을 짚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통치를 분명히 말하지만, 개별 사건의 이유를 인간이 다 알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욥은 끝까지 자기 고난의 이유를 설명받지 못했습니다. 예수 역시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은 열여덟 명이 더 큰 죄인이었느냐는 물음에 아니라고 답하셨습니다(누가복음 13:4-5).

그렇다고 이 소설이 허무주의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와일더는 마지막에 이르러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를 잇는 유일한 다리는 사랑이라는 취지의 문장을 남깁니다. 무너진 것은 나무와 밧줄로 만든 다리였고, 남은 것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준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완결된 답은 아니지만, 방향은 성경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방법을 하나 제안합니다. 주니퍼 수사의 질문을 따라가되, 그의 결론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대신 다섯 사람의 마지막 몇 달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들 대부분이 죽기 직전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진짜 위로입니다.

지금도 뉴스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재난이 이어집니다. 왜 그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대개 알지 못합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사랑을 미루지 않는 것, 그것이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다리라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