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나를 따르라 — 본회퍼의 값비싼 은혜

루카 · 2026.07.25

디트리히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는 전쟁 직전의 독일에서 쓰였습니다. 교회가 국가 권력 앞에 무릎을 꿇던 시기에, 한 젊은 신학자는 은혜라는 단어가 어떻게 값싸지는지를 파고들었습니다. 오늘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있는 책입니다.

본회퍼는 1906년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아들로 자랐고, 20대에 이미 신학자로 인정받았습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독일 교회의 다수는 체제를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었고, 그는 이에 반대하는 고백교회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그가 핑켄발데에서 목회자 후보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르친 내용을 정리해 1937년에 펴낸 책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두 단어의 대비입니다.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입니다. 값싼 은혜란 회개 없이 선언되는 용서, 따르는 삶 없이 받는 세례, 값을 치르지 않고 소유물처럼 취급되는 구원을 뜻합니다. 본회퍼는 이것을 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값비싼 은혜는 부르심에 응답해 따라나서는 순종을 동반합니다. 값비싼 이유는 사람이 대가를 지불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의 생명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공짜로 주어지지만 결코 싸구려가 아닙니다.

책의 중심에는 산상수훈이 놓여 있습니다. 본회퍼는 산상수훈을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으로 밀쳐 두는 해석을 거부하고, 지금 순종해야 할 명령으로 읽었습니다. 그가 반복해서 말한 문장이 있습니다.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위를 대립시키지 않으면서도 값싼 신앙을 봉쇄하는 표현입니다.

그의 삶이 이 책의 각주가 되었습니다. 본회퍼는 나치에 저항하는 조직에 가담했고, 1943년 4월 5일 게슈타포에 체포되었습니다. 2년의 수감 생활 끝에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서른아홉이었습니다. 종전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때였습니다.

다만 균형 있게 짚을 대목이 있습니다. 그가 히틀러 암살 계획에 관여한 일을 두고는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도 평가가 갈립니다. 폭군에 맞선 정당한 저항이었다는 평가와, 목회자가 취할 수단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공존합니다. 이 논쟁을 덮고 그를 영웅으로만 소비하는 것은 그가 평생 경계한 값싼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의 신학이 남긴 질문은 영웅담이 아니라, 신앙에 대가가 따를 때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물음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누가복음 14:27-28). 예수님은 값을 계산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값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본회퍼가 한 일은 새로운 주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워 버린 그 가격표를 다시 붙여 놓은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소식이 이어지는 계절에 이 책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 교회에 필요한 것은 더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값을 알고도 따라나서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