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인류의 전쟁 대부분을 일으켰다는 말은 오늘날 상식처럼 통용됩니다. 실제로 중동의 포성이 이어지는 지금, 이 주장은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이 반론을 가장 강한 형태로 세워 놓고 검토해 보겠습니다.
반론은 이렇습니다. 종교는 인간에게 절대적 확신을 준다. 절대적 확신을 가진 사람은 타협하지 않는다. 협상할 수 없는 신념이 무기를 만나면 학살이 된다. 십자군, 30년 전쟁, 오늘의 중동이 그 증거다. 따라서 종교를 줄이는 것이 폭력을 줄이는 길이다. 이것은 조롱거리가 아니라 진지한 논증입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잔혹 행위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첫째로 볼 것은 규모입니다. 찰스 필립스와 앨런 액설로드가 편찬한 세 권짜리 전쟁 백과사전은 인류 역사의 전쟁 1,763건을 정리했습니다. 이 가운데 종교 전쟁으로 분류된 항목은 120여 건, 전체의 7퍼센트 안팎입니다. 다만 이 수치를 인용할 때는 정직해야 합니다. 이 분류는 본문의 서술이 아니라 제3권 색인에 실린 목록에 근거한 것이고, 어떤 전쟁을 종교 전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역사학자들 사이에 이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료가 보여 주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종교는 전쟁의 주된 원인 목록에서 상위권이 아닙니다.
둘째는 20세기입니다. 만약 종교가 폭력의 원인이라면, 종교를 국가 차원에서 제거한 사회는 더 평화로웠어야 합니다.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무신론을 국가 원리로 삼은 20세기의 체제들, 곧 소련과 문화대혁명기의 중국과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에서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희생자 수 추정치는 자료에 따라 크게 갈리므로 여기에 특정 숫자를 못 박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어떤 추정을 택하더라도 결론은 바뀌지 않습니다. 신을 지운 자리에 평화가 들어서지는 않았습니다.
셋째는 논리입니다. 반론의 핵심 전제는 절대적 확신이 폭력을 낳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절대적 확신을 공급하는 것은 종교만이 아닙니다. 민족, 계급, 인종, 혁명, 순수한 국가 같은 개념들도 사람에게 목숨을 걸게 만듭니다. 문제는 확신이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궁극적인 것으로 삼느냐입니다. 인간은 절대적인 무언가 없이 살지 못합니다. 종교를 치워도 그 자리는 비어 있지 않고 다른 것으로 채워집니다.
성경은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해 가장 냉정한 진단을 내립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예레미야 17:9). 기독교는 인간이 본래 선한데 종교가 망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 자체가 문제의 진원지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제거해서 인간을 고치겠다는 처방은, 병의 원인을 잘못 짚은 처방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은 실재했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통계는 종교가 전쟁의 주된 원인이 아님을 보여 주며, 종교를 제거한 20세기의 실험은 폭력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진짜 원인은 종교가 아니라 인간이며, 그것을 가장 먼저 말한 책이 성경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에게 절망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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