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첫 문장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명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전제로 두고, 이 세상에 시작이 있었다고 선언합니다. 오늘은 그 한 문장 앞에 서 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이 문장에는 논증이 없습니다. 설득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려 들지 않고, 그분이 시작하셨다고 말할 뿐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독자를 재판관 자리에 앉히지 않습니다.
이 선언이 처음 들린 시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고대 근동의 이웃 민족들에게도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대개는 신들이 서로 싸우고, 그 싸움의 부산물로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줄거리였습니다. 창세기는 그 자리에서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다투는 신이 없습니다. 한 분이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됩니다.
부르는 방식에서도 그렇습니다. 창세기 1장 16절은 해와 달을 신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저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라고 부릅니다. 당시 사람들이 무릎 꿇던 대상을 하나님이 만드신 물건의 자리로 내려놓은 것입니다.
시작이 있다는 말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시작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있지 않은 것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지도 못합니다. 그렇다면 내 삶의 의미도 내가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으신 분에게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담이 아니라 안도입니다. 의미를 만들어 내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 가지만 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지금 가장 마음을 누르고 있는 일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일이 우연히 굴러가는 세계가 아니라, 태초에 시작을 여신 분의 세계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 소리 내어 말해 보십시오. 상황은 그대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이 놓인 자리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태초에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오늘 저의 하루도 주께서 시작하신 세계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저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말씀 한마디로 빛이 있게 하신 주님, 어둡게 보이는 제 자리에도 주의 말씀이 임하게 하옵소서. 오늘 만나는 일과 사람 앞에서 제가 주인이 아니라 지음받은 자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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