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영화 「침묵의 소리」는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기소된 교사의 재판을 그립니다.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통해 1925년 미국의 이른바 원숭이 재판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남긴 기억과 실제 기록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습니다.
먼저 실제 사건입니다. 1925년 3월 13일 미국 테네시주 의회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발의자의 이름을 따 버틀러법이라 부릅니다. 그해 5월, 스물넷의 임시 교사 존 스코프스가 이 법을 어긴 혐의로 고발됐습니다. 재판은 7월 10일 인구 2천 명이 채 되지 않던 작은 마을 데이턴에서 열렸습니다. 검사석에는 국무장관을 지내고 세 차례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변호인석에는 미국시민자유연합의 간판 변호사 클래런스 대로우가 앉았습니다. 7월 21일 스코프스는 유죄 판결과 함께 벌금 100달러를 선고받았습니다. 브라이언은 닷새 뒤인 7월 26일 일요일 오후, 낮잠을 자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는 이 재판을 다루면서도 지명과 인명을 전부 바꿉니다. 데이턴은 힐스보로가 되고, 스코프스는 케이츠, 대로우는 드러먼드, 브라이언은 브래디가 됩니다. 원작은 1955년 제롬 로런스와 로버트 E. 리가 쓴 희곡이고, 영화는 1960년 스탠리 크레이머가 연출했습니다. 스펜서 트레이시와 프레드릭 마치가 두 변호사를 맡았습니다. 이 작품이 쓰인 시기는 미국이 매카시즘의 후유증을 앓던 때였습니다. 작가들이 겨눈 표적은 1925년의 재판 자체라기보다, 사상을 심문하는 모든 시대의 법정이었습니다. 실명을 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진 일입니다. 작품이 무대와 스크린에서 수천 번 상연되는 사이, 각색된 허구가 역사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무지하고 사나운 군중으로, 그들의 대변자는 우스꽝스러운 노인으로 기억됐습니다. 실제 재판에서 브라이언이 성경 해석을 두고 흔들리는 답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 서서 정치를 한 인물이었고, 마을 사람들 역시 재판이 가져올 세간의 관심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구도는 그 복잡함을 지웁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반기독교 선전물로 몰아붙일 일은 아닙니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 자체는 정당합니다. 국가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못하게 할지 정할 권한을 어디까지 가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오늘 한국 교회가 교육과 표현의 자유 문제에서 그대로 마주하는 질문입니다. 진영이 바뀌었을 뿐 구조는 같습니다. 그때는 신앙을 가진 쪽이 법으로 강의실을 통제하려 했고, 지금은 반대 방향의 압력이 교회를 향합니다. 강제로 지켜 낸 신앙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우리 편에 서지 않은 채로 알려 줍니다.
읽는 법은 하나입니다. 잘 만든 이야기일수록 그 이야기가 기록인지 각색인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잠언 18:17).
잘 만들어진 극은 언제나 먼저 온 사람의 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극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극을 본 뒤에 기록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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