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후대에 지어낸 종교적 창작물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윗은 아서왕 같은 전설이고, 성경 속 왕국과 인물들은 신앙 공동체가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을 정면으로 다뤄 봅니다.
이 반론은 인터넷 여론이 아니라 실제 학계에서 제기된 것입니다. 20세기 후반 일부 성서학자들은 이스라엘 역사 기록의 상당 부분이 훨씬 후대에 쓰였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든 근거는 나름대로 강합니다. 첫째, 오랫동안 성경 밖 사료에서 다윗이라는 이름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고대 근동의 왕실 기록은 자기 왕조를 미화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셋째, 종교 문헌이 자기 신앙의 정당성을 위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일은 실제로 흔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증언하는 인물을 역사적 실존 인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논리 자체는 무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전제가 시간이 지나며 계속 흔들려 왔다는 점입니다. 1993년 이스라엘 북부 텔단 유적에서 고고학자 아브라함 비란 팀이 비석 파편을 발견했습니다. 기원전 9세기 아람어 승전비로, 여기에 다윗의 집이라는 표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성경 밖 자료에서 다윗 왕조를 직접 언급한 가장 이른 기록입니다. 다윗 개인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를 시조로 하는 왕조를 적국이 그렇게 불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전설 속 인물의 이름을 적국이 왕조명으로 쓸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식의 확인은 여러 차례 반복됐습니다. 19세기에 발견된 모압 석비에는 열왕기하에 나오는 모압 왕 메사의 반란이 모압 측 시각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남긴 점토 기둥 기록에는 유다 왕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가두었다는 서술이 남아 있는데, 이는 열왕기하 18장과 19장의 포위 사건과 맞물립니다.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1960년대 초 가이사랴에서는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과 직함이 새겨진 돌 비문이 나왔습니다. 그리스 델피에서 발견된 갈리오 비문은 사도행전 18장에 등장하는 총독 갈리오의 재임 시기를 확인해 주어, 바울의 고린도 체류 연대를 계산하는 기준이 됐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대제사장 가야바의 유골함, 2004년 확인된 실로암 연못도 같은 계열의 자료입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이런 발견들은 성경의 신학적 주장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빌라도 비문은 빌라도가 실존했음을 보여줄 뿐, 그 앞에 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고고학은 신앙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고고학이 하는 일은 다른 것입니다. 성경 기록이 신화의 시간대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역사의 시간대 위에 서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확인은 한 방향으로만 축적돼 왔습니다. 성경 밖 자료가 새로 나올 때마다 성경 기록이 뒤집힌 것이 아니라, 침묵하던 자리가 채워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성경은 애초에 검증을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이 등장한 시점을 디베료 황제 재위 열다섯째 해로, 당시 총독과 분봉왕과 대제사장의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 기록했습니다(누가복음 3:1-2). 이것은 옛날 옛적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는 식의 서술과 정반대입니다. 확인해 보라고 좌표를 찍어 둔 문장입니다. 누가는 자기 집필 원칙도 밝혔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누가복음 1:3).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성경 인물이 지어낸 존재라는 주장은 한때 합리적 추정이었으나, 확인 가능한 지점마다 그 반대 방향의 자료가 나왔습니다. 고고학은 신앙의 대체물이 아니지만, 우리 믿음의 대상이 역사와 무관한 관념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해 줍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시간과 장소를 가진 사건 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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