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사도행전 4:19-20).
초대교회 지도자 두 사람이 신앙 활동을 법으로 금지당한 자리에서 남긴 대답입니다. 이 본문은 믿음을 드러내기 어려운 자리에 선 오늘의 성도에게도 그대로 말을 겁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 문 앞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서는 일을 겪은 뒤 붙잡혔습니다. 이들을 심문한 곳은 산헤드린 공회, 곧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 재판 기구였습니다. 공회는 두 사람에게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종교 활동 자체를 공권력으로 막은 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답은 감정을 앞세운 항변이 아니었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오히려 상대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라고 말합니다. 보고 들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확신은 논쟁에서 이겨서 생긴 것이 아니라, 겪은 사실에서 나왔습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풀려난 뒤의 기도입니다. 그들은 위협을 없애 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4:29)
상황이 바뀌기를 구하는 대신, 그 상황 안에서 담대할 수 있기를 구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 신앙을 슬쩍 감추게 되는 자리를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직장의 대화일 수도, 오래된 친구 모임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길게 설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주일에 예배에 다녀왔다는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오늘은 그 한 문장을 삼키지 않고 꺼내 보시기를 권합니다.
주님,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한 사도들의 담대함을 기억합니다. 저희는 손해가 두려워 신앙을 감출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위협을 치워 주시기보다, 그 자리에서 담대하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도 신앙 때문에 법정과 감옥에 서는 세계의 성도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오늘 저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한 마디의 정직한 고백을 하게 하시고, 그 고백을 통해 주님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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