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 전체가 걸린 주장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훌륭한 도덕 체계로 남을 뿐, 구원의 종교일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 주장을 역사적으로 검토할 때 어떤 근거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먼저 반론을 가장 강한 형태로 정리하겠습니다. 회의론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은 지금까지 관찰된 자연의 규칙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극히 예외적인 주장에는 그에 걸맞은 압도적 증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부활을 전하는 기록은 모두 그것을 믿는 공동체 내부에서 나온 문서이며, 사건과 상당한 시간 차가 있다. 목격담이라는 것도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적 환각이나, 세월이 흐르며 부풀려진 전설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진지하게 다뤄야 할 반론입니다.
첫째로 짚어야 할 것은 자료의 시기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 이하에는 예수의 죽음과 장사, 부활과 목격을 순서대로 나열한 짧은 고백문이 인용돼 있습니다. 다수의 신약학자들은 이것이 바울이 직접 지은 문장이 아니라 그가 전해 받아 옮긴 초기 전승이며, 사건 발생 후 비교적 이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봅니다. 전설이 형성되려면 목격자 세대가 사라질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자료는 목격자들이 아직 살아 있던 시기를 가리킵니다.
둘째는 여성 증인 문제입니다. 네 복음서는 모두 빈 무덤을 처음 발견한 사람으로 여성을 지목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정에서 낮게 평가되곤 했습니다.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꾸며내려는 사람이라면 굳이 넣지 않았을 요소입니다. 역사 연구에서는 저자에게 불리하거나 불편한 기록일수록 조작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셋째는 환각 가설의 한계입니다. 환각은 개인의 뇌에서 일어나는 사적 경험이므로,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여러 사람이 동일한 내용을 겪는 집단 환각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부활을 증언한 사람 중에는 그것을 기대하지 않던 이들도 있습니다. 교회를 앞장서 박해하던 바울, 생전에 예수를 믿지 않았던 동생 야고보가 대표적입니다. 이미 믿고 싶어 하던 사람이 환각을 본 것과,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이 돌아선 것은 무게가 다릅니다.
넷째는 증언의 대가입니다. 초기 제자들은 이 증언을 지키다가 투옥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인정할 부분이 있습니다. 죽음을 감수했다는 사실이 그 내용의 진실성까지 자동으로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논거가 확실히 말해 주는 것은, 그들이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인 줄 알면서 죽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그들은 자신이 보았다고 믿은 것을 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신앙 체험이 아니라 목격된 사실로 제시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사도행전 2:32).
바울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린도전서 15:17).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부활 증언은 사건에 가까운 이른 자료에서 나왔고, 꾸며냈다면 넣지 않았을 불리한 요소를 포함하며,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의 회심까지 설명해야 합니다. 역사 연구는 수학처럼 100퍼센트 증명을 내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 대안 가설보다 부활을 사실로 볼 때 자료가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된다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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