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침묵, 하나님은 정말 침묵하셨나

루카 · 2026.07.22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를 배경으로, 끝내 신앙을 버린 사제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박해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지만, 결말이 배교를 사실상 정당화한다는 논란이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작품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짚어 봅니다.

《침묵》은 1966년 신초샤에서 출간된 역사소설로, 제2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받았습니다. 세계 13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은 엔도를 20세기 기독교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982년 홍성사에서 처음 나왔고 2002년 개정증보판이 출간됐습니다. 2016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영화로 만들면서 다시 널리 읽혔습니다. 엔도 자신이 열두 살에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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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실제 역사입니다. 포르투갈 예수회 사제 크리스토방 페레이라는 1609년 일본에 들어가 교구장 대리로 조직을 이끌다가 1633년 나가사키에서 체포됐습니다. 그는 다른 사제·신자들과 함께 닷새간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나카우라 줄리앙 등은 순교했지만 페레이라는 끝내 신앙을 버렸습니다. 이후 사와노 주안으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인 아내를 맞아 막부에 협력했습니다. 소설 주인공 로드리고의 역사적 모델은 이탈리아 출신 사제 주세페 키아라로, 그는 1643년 지쿠젠에서 체포됐습니다. 페레이라가 당한 고문은 구멍 매달기로, 거꾸로 매단 뒤 관자놀이에 구멍을 뚫어 피가 조금씩 흐르게 해 오래 고통받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후미에는 예수나 마리아의 형상이 새겨진 판을 밟게 해 신자를 가려내던 도구입니다.

줄거리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스승 페레이라가 배교했다는 소식을 확인하려 일본에 잠입한 로드리고는, 숨어 지내는 신자들이 붙잡혀 죽는 것을 계속 목격합니다. 그 죽음에는 어떤 영웅적인 장면도 없습니다. 그는 왜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지 거듭 묻습니다. 마지막에 관리들은 신자들을 구멍에 매달아 놓고, 로드리고가 후미에를 밟으면 그들을 풀어 주겠다고 회유합니다. 로드리고는 결국 발을 올려놓고, 그 순간 성화 속 그리스도가 밟으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 작품이 거둔 성취는 분명합니다. 엔도는 순교를 영웅담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배신하고 도망쳤다가 또다시 돌아와 용서를 구하는 키치지로라는 인물을 통해, 강한 신앙만 신앙으로 치는 시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밀어냈는지 드러냅니다. 실제 박해의 현장이 결코 깔끔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정직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결말의 음성은 배교를 이웃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선택으로 승인하는 방향으로 읽히기 쉽습니다. 엔도 자신은 한 대담에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더라도, 작품이 독자에게 남기는 결론이 그 의도와 같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태복음 10:33).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넘어진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과, 넘어짐 자체를 옳다고 선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버리지 않고 다시 세우십니다(요한복음 21장). 그러나 그 회복은 부인이 옳았다는 선언이 아니라,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한 자리에서 시작된 용서였습니다. 《침묵》은 앞의 위로는 깊이 붙잡았지만, 뒤의 기준은 흐려 놓았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형태가 다른 후미에가 놓입니다. 승진과 인간관계, 여론의 눈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그 순간의 무게를 누구보다 정직하게 그려 보여 줍니다. 다만 그 앞에서 우리가 붙들 약속은 밟아도 괜찮다는 음성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말씀해 두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