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참사 소식이 뉴스를 채울 때마다 어김없이 제기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전능하고 선한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고통을 막지 않으시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이를 흔히 이렇게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악을 막을 힘이 있을 것이고, 선하다면 악을 막을 의지가 있을 것인데, 실제로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런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라는 논리입니다. 이는 철학에서 오랫동안 다뤄져 온 가장 정교하고 진지한 반론 중 하나이며,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이 반론에 대한 첫 번째 답은 자유의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할 능력이 있는 존재로 만들고자 하셨고, 사랑은 강요될 수 없기에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그 자유를 남용해 서로를 해치기로 선택한 인간의 결과입니다. 자유의지 없는 인간을 만드셨다면 애초에 전쟁도, 사랑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답이 자연재해처럼 인간의 선택과 무관한 고통까지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신학자들은 인간의 죄로 인해 세상 질서 자체가 온전함을 잃었다는 관점(창세기 3장의 타락 이후 세상)을 함께 제시해 왔습니다.
두 번째 답은 하나님이 고통에서 멀리 떨어져 방관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배신과 조롱, 고문과 처형이라는 극한의 고통을 직접 겪으신 사건, 곧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이사야 53:5). 다른 종교와 철학 체계 중에는 신이 인간의 고통 밖에 초연히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기독교는 하나님이 그 고통 안으로 직접 들어오셨다고 말하는 독특한 신앙입니다.
세 번째로 짚어야 할 것은, 고통의 존재가 하나님의 부재를 증명하지 않는다는 논리적인 문제입니다. 무언가가 "악하다"고 판단하려면 선악을 판단할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이 없다면 그 절대 기준 자체가 존재할 근거가 없습니다. 즉 전쟁이 참으로 악하다고 분노하는 그 마음 자체가, 선악의 절대 기준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오히려 전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여러 기독교 변증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해 온 논점입니다.
성경은 고통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철학적으로 완벽하게 해명하기보다,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 전쟁과 고통 앞에서 우리는 모든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하나님, 그리고 그 고통 너머의 소망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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