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

아펜젤러, 부활절에 온 복음의 사람

루카 · 2026.07.20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스물일곱 살의 미국 선교사가 제물포 항에 내렸습니다. 미국 북감리회가 파송한 헨리 아펜젤러(1858-1902)입니다. 그는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같은 날 조선 땅을 밟았고, 도착한 날이 부활절이었기에 이렇게 기도했다고 전해집니다. 무덤의 문을 여신 부활의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것들을 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이후 17년, 그의 삶은 이 기도를 이루는 데 바쳐졌습니다.

아펜젤러가 택한 길은 교육이었습니다. 그는 1885년 8월 조선 청년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886년 고종은 인재를 기른다는 뜻의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내렸습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그가 세운 학훈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였습니다. 이 학교에서 이승만, 주시경, 안창호 같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대한민국 건국과 한글 연구, 독립운동의 줄기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또한 정동제일교회를 세워 이 땅 감리교회의 초석을 놓았고, 성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 사업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그의 마지막도 성경과 함께였습니다. 1902년 6월, 아펜젤러는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자 회의에 참석하러 배를 타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배는 어청도 앞바다에서 다른 선박과 충돌해 침몰했습니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그는 함께 배에 탔던 조선인 동역자와 여학생을 구하려고 탈출을 미루다가 끝내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마흔네 살이었습니다. 시신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고,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시신 없는 무덤이 그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의 근대 교육과 교회, 그리고 건국의 인재들은 우연히 자라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한 사람이 청년을 가르치고, 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옮기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조선 사람을 먼저 구하려다 목숨을 내려놓은 그 자리에서 자라났습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학훈은 그에게 표어가 아니라 삶이었고, 죽음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가복음 10:43).

아펜젤러는 이 말씀대로 섬김으로 큰 사람이 되었고, 그가 뿌린 씨는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이라는 열매로 자랐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도착해 바다에서 생을 마친 이 선교사의 유산, 곧 섬김으로 사람을 세우는 믿음을 오늘 우리가 이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