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는 같은 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서로 다른 길이다. 그러니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주장은 오만하고, 종교 갈등의 뿌리가 된다." 오늘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종교관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주장은 관용이라는 미덕과 결합되어 있어 설득력이 있고, 종교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학문적으로도 다듬어져 왔습니다. 진지하게 답할 가치가 있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의 가장 강한 형태는 이렇습니다. 인간은 유한하므로 누구도 무한한 실재를 다 알 수 없다. 각 종교는 같은 궁극적 실재를 자기 문화의 언어로 부분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종교가 자신만 옳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경험의 한계를 잊은 태도다. 여러 시각장애인이 코끼리의 각 부분을 만지고 서로 다르게 묘사했다는 비유가 자주 인용됩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논리적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세계 종교들의 핵심 주장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서로 모순됩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주장과 신이 여럿이라는 주장, 신이 없다는 주장은 동시에 참일 수 없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과 예수는 선지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명제가 모두 참일 수는 없다는 것은 신앙 이전에 논리의 기본입니다. 모든 종교가 같다는 말은 각 종교가 실제로 무엇을 주장하는지 들여다보지 않을 때만 성립합니다.
둘째, 종교다원주의는 스스로 겸손을 내세우지만 실은 또 하나의 배타적 주장입니다. 모든 종교가 부분적으로만 옳다는 판단은, 모든 종교의 자기 이해가 틀렸다고 선언하는 상위의 진리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코끼리 비유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부분만 만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은 코끼리 전체를 보고 있다고 전제하는 사람뿐입니다. 결국 이 비유를 드는 사람 자신이 가장 큰 진리 주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셋째, 기독교의 유일성 주장은 근거 없는 오만이 아니라 검증에 열려 있는 역사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4:6)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이 선언의 참됨을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걸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라고 썼습니다(고린도전서 15:14). 확인할 수 없는 신비 체험이 아니라, 특정 시대와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에 자기 운명을 건 종교는 흔치 않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가 여호와와 바알을 절충하지 않고 공개 검증을 요청했던 것처럼, 기독교는 검증을 회피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마지막으로 구별할 것이 있습니다. 관용은 모든 주장이 똑같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용은 나와 다르게 믿는 사람의 인격과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진리 주장과 인격 존중은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으며, 실제로 이웃 사랑을 명령받은 그리스도인이야말로 그렇게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정리합니다. 종교들의 핵심 주장은 서로 모순되므로 모두 참일 수 없고, 모든 종교가 같다는 주장 자체가 하나의 배타적 주장이며, 기독교는 역사적 검증에 자신을 연 신앙입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오만할 이유도, 움츠러들 이유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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