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세상 끝날에 있을 마지막 심판을 그리시면서, 왕으로 다시 오실 자기 자신을 "임금"에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그 임금이 모든 사람을 두 편으로 나누는데, 기준은 놀랍게도 화려한 업적이 아니었습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가, 병든 자를 돌보았는가, 바로 그것이 기준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이웃에게 한 일이 곧 그리스도께 한 일이라는 사실을 심판대 앞에서 밝히 보여 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며칠 전에 하신 가르침입니다. 왕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맞아 주었고, 헐벗었을 때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리둥절해합니다. 자기들이 언제 주님께 그런 일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도운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들이었으니까요.
바로 그때 임금의 대답이 이 본문의 심장을 드러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란 세상이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 이름 없이 스러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그 낮은 자리에 자기 자신을 겹쳐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왕이 저 높은 보좌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굶주린 사람의 얼굴 뒤에, 병상에 누운 사람의 얼굴 뒤에 그 왕이 숨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웃을 돌보는 일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눈에 보이는 사람 안에서 섬기는 예배입니다.
오늘도 우리 곁과 세계 곳곳에는 지극히 작은 자들이 있습니다. 병상에 홀로 누운 이웃, 끼니를 거르는 아이, 이름도 모르는 먼 나라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입니다. 그 고통이 나와 무관해 보일 때, 이 말씀은 우리를 붙잡습니다. 그들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면, 그들을 외면한 것 또한 주님을 외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 가지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 얼굴 뒤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겹쳐 놓은 다음, 오늘 안에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한 걸음을 정하십시오. 기도 한 줄, 후원 한 번, 안부 한 통이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안에 자신을 숨기신 주님, 저희가 날마다 주님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알아보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굶주린 자와 병든 자와 외로운 자의 얼굴에서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먼 곳의 고통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게 하시고, 저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오늘 내딛게 하옵소서. 심판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작은 자를 섬기는 것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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