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겨울, 평양의 한 예배당에서 한국 교회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름 없는 부흥회처럼 시작된 사경회에서, 한 지도자의 공개적인 죄 고백이 도화선이 되어 회개의 불길이 번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는 한국 교회의 뜨거운 기도와 새벽기도의 전통이 바로 이 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평안남도 겨울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사경회란 성도들이 여러 날 함께 모여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는 집회를 말합니다. 새벽기도와 오전 성경공부, 오후 전도, 저녁집회로 짜인 일정이 열흘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 선교사는 그때의 답답함을 두고, 기도가 하늘에 닿지 못하고 막힌 것 같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전환점은 1월 14일 저녁 집회에서 찾아왔습니다. 이길함 선교사(그레이엄 리)가 통성기도를 인도하자 회중이 한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 길선주 장로가 일어섰습니다. 그는 한국인 최초의 장로교 목사 안수를 앞둔 존경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회중 앞에서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친구가 맡긴 재산의 일부를 자신이 가로챘다는 부끄러운 죄를 스스로 드러낸 것입니다. 아간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것을 몰래 감춘 죄로 공동체 전체가 어려움을 겪게 한 인물입니다. 지도자의 이 정직한 고백 앞에서 예배당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뒤이어 수백 명이 밤을 새워 자신의 죄를 토해 냈습니다.
이 부흥이 남긴 것은 감정의 소동이 아니었습니다. 회개는 삶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훔친 것을 갚고, 미워하던 사람과 화해하고, 잘못된 관습을 끊는 일이 뒤따랐습니다. 놀라운 것은 예배당 안의 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전까지 남자와 여자, 양반과 상민이 예배당 안에서도 따로 앉았는데, 이 부흥을 지나며 신분을 넘어 한자리에서 함께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마음뿐 아니라 굳어진 사회의 벽까지 흔든 것입니다. 이 불길은 평양에 머물지 않고 한반도 전역으로, 이듬해에는 만주와 중국으로까지 번져 갔습니다.
이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부흥은 프로그램이나 웅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직한 회개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을 향하던 손가락을 자기 가슴으로 돌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1907년의 불길을 오늘 이어받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나의 죄부터 정직하게 아뢰는 그 무릎에서, 부흥은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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