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LOGETICS

종교는 해로운가 — 병원의 역사

루카 · 2026.07.18

"종교는 모든 것을 오염시킨다." 무신론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이 주장은, 기독교가 인류 역사에 해악을 끼쳐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병자를 돌보는 일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오히려 정반대의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주장을 가장 강한 형태로 세워 보겠습니다. 회의론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는 십자군과 마녀사냥 같은 폭력의 원인이었고, 과학의 발목을 잡았으며, 인류에게 준 것보다 빼앗은 것이 많다. 세상은 종교 없이도 도덕적일 수 있고, 오히려 종교가 사라져야 더 나은 세상이 된다. 이것은 진지하게 답할 가치가 있는 도전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은 이 주장과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낯선 사람을 무료로 돌보는 '병원'이라는 제도 자체가 기독교에서 나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 의술은 대개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병들고 버려진 이를 조건 없이 거두는 관행은 널리 퍼져 있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는 달랐습니다. 2세기와 3세기에 전염병이 로마 제국을 휩쓸었을 때, 많은 사람이 병든 가족까지 버리고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병자 곁에 남아 물과 음식을 나르며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로마 사회는 충격을 받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그 사랑의 이유를 물으며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이후 기독교는 병자를 돌보는 일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4세기 이후 수도원과 교회는 나그네와 병자를 위한 쉼터를 세웠고, 이것이 오늘날 병원의 뿌리가 됐습니다. 간호를 하나의 소명으로 발전시킨 근대 간호의 어머니 나이팅게일도 깊은 신앙에서 출발했습니다. 세계 곳곳의 오지에 처음 병원과 학교를 세운 이들은 대부분 선교사였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최초의 서양식 병원과 여성 전문 병원, 결핵 퇴치 운동이 모두 내한 선교사들의 손에서 시작됐습니다.

물론 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잘못도 역사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배신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반대로 병자를 돌보는 헌신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는 그분의 가르침을 정확히 따를 때 나온 열매입니다. 무엇이 나무의 참된 열매인지는, 그 가르침을 어겼을 때가 아니라 지켰을 때 드러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병원이라는 제도와 낯선 이를 조건 없이 돌보는 윤리는 기독교가 세상에 준 선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볼라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환자를 지키는 이들이 대부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이 가르침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언합니다. 종교가 세상을 오염시킨다는 말 앞에서, 우리는 병상 곁에 남았던 수많은 이름 없는 신자들의 손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