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콩고에서 목숨을 걸고 병자를 돌보는 선교사들의 모습은, 130여 년 전 이 땅에서 똑같은 길을 걸은 한 가족을 떠올리게 합니다. 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 윌리엄 제임스 홀과 그의 아내 로제타 셔우드 홀의 이야기입니다.
윌리엄 제임스 홀(1860~1894)은 평양을 개척한 의료선교사였습니다. 당시 평양은 외국인과 복음에 문을 굳게 닫은 도시였습니다. 1866년 이곳에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땅이었습니다. 아내 로제타가 평양 선교의 위험을 묻자, 홀은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하나님이 이 도시의 문을 여시려고 한 사람의 희생을 원하신다면, 자신이 그 희생자가 되기를 피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곧 현실이 됐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이 터지자 평양은 전쟁터가 됐습니다. 홀은 폐허 속에서 밤낮으로 부상자와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과로 끝에 그는 발진티푸스에 걸렸습니다. 위독한 그를 동료 선교사들이 배로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옮겼지만, 1894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에 온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고, 나이는 서른다섯이었습니다. 아내 로제타는 그때 임신 중이었습니다.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은 남편을 잃고도 이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편보다 먼저 조선에 파송돼 여성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그는, 남편에 이어 어린 딸까지 전염병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명을 놓지 않았습니다. 여성과 어린이,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해 43년을 헌신하며 '평양의 오마니'로 불렸습니다. 그의 손에서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김점동)가 배출됐습니다. 아들 셔우드 홀은 서울에서 태어나 훗날 결핵 퇴치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홀 가문은 3대에 걸쳐 여섯 명이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몇 해 전 우리 정부는 로제타 홀의 헌신을 기려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요한복음 12:24)이 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 홀은 3년도 안 되는 짧은 사역 끝에 이 땅에 묻혔지만, 그의 죽음은 아내와 아들과 수많은 조선의 병자들을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낯선 외국인이 조선인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 모습 앞에서 평양 사람들의 닫힌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어가야 할 유산은 분명합니다. 병든 자 곁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130년 전 평양에서도 지금 콩고에서도 같은 복음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그 무거운 사랑의 계보 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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