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

주기철 목사, 일사각오의 신앙

루카 · 2026.07.14

「도입」
1930년대 말, 한국 교회는 가장 어두운 시험대 위에 섰습니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라는 이름으로 강요했고, 교회는 굴복과 저항 사이에서 갈라졌습니다. 그 갈림길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강단을 지킨 목회자가 있었습니다. 평양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입니다.

「역사 서술」
주기철은 1897년 11월 25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습니다. 1916년 연희전문에 진학했으나 심한 안질로 중퇴했고, 이후 평양의 장로회신학교를 거쳐 1925년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부산 초량교회와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한 그는 1936년 7월 평양 산정현교회에 부임하면서 일제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사참배 강요를 공개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1938년, 전국 장로회 총회가 일제의 강요와 탄압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일사각오', 곧 한 번 죽기를 각오한다는 제목의 설교로 신사참배 거부를 호소했습니다. 그에게 신사참배는 정치적 의례가 아니라 십계명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정면으로 범하는 우상숭배였습니다. 일제는 그를 거듭 검속했고, 그는 평양 감옥에서 5년여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고문과 회유가 반복되었으나 그는 끝내 꺾이지 않았고, 1944년 4월 21일 옥중에서 순교했습니다. 광복을 불과 1년 4개월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기억할 것은 그의 저항이 홀로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산정현교회는 담임목사만이 아니라 부목사와 전도사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해 함께 투옥되는 공동체적 저항의 본을 보였습니다. 한 사람의 일사각오가 한 교회의 일사각오가 된 것입니다.

「신앙 유산」
주기철 목사의 순교는 오늘의 한국 교회에 두 가지를 증언합니다. 첫째, 신앙의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제1계명 때문에 죽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세울 것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목숨으로 확증한 것입니다. 둘째, 타협이 다수가 될 때에도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총회가 굴복하던 날에도 진리의 자리는 옮겨지지 않았고, 역사는 결국 굴복한 총회가 아니라 감옥의 순교자가 옳았음을 판정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예배하는 이 땅의 신앙은 이런 이들이 피로 값 주고 지킨 유산입니다.

「맺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예배의 자유가 당연해진 시대에, 그 자유가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이어가야 할 유산입니다.